태연 노노카 영상 커버에 비난하는 이들. 비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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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 간 외교 문제가 첨예한 갈등 중이라도 국민 간 혐오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일부라지만 극우 사회 일본과 극좌 사회 한국의 사회상이 반영되었다고 해도 그건 정치 영역에서의 최소한의 갈등이어야 한다. 하지만 혐오조차도 양념이라는 부추김에, 악플러는 당당하게도 대단히 정의로운 양 모든 사안에 혐오 공격으로 관계를 단절시키고 폭력 사회를 만들어 가 염려스럽다.

 

외교 문제가 아닌 일반 국민 생활까지 파고든 이 혐오의 정당성으로 인해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제약을 받고 있는 건 한숨 나오는 일이다. 유니클로 제품을 사면 매국노 취급을 받고. 일본산 차량을 끌면 보복을 당하는 사회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저 삶이 팍팍해 저가의 적당한 품질 제품을 사는 국민이 매국노 취급을 받는 게 정상이라 할 수 없듯. 단지 일본산 차량을 몬다고 매국노 취급을 받으며 범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이 나라가 법치민주주의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가수 태연의 논란도 마찬가지다. 만 2세의 일본 아동이 부른 동요 무대에 감명해 커버 영상을 SNS에 공개한 것을 두고. ‘매국노 놀이’를 하는 비뚤어진 정치색 악플러들이 그녀를 비난하는 중이다.

 

’유아퇴행적’이니. ‘매국노’이니.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폭력적으로 공격 중이다. 게다가 ‘여성 인권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까지 하는 중이다.

 

그저 비난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해대는 수준이니 정상적인 논리로는 보이지 않는다.

 

태연은 반공인이자 엔터테이너로 다소 나이에 안 맞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 위치에 있다. 가수를 떠나 방송인으로도 활동 중이고. 흔히 말하는 연예인으로 일반인이 힘들어하는 오락적인 모습도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동요 커버 무대를 보일 수도 있고. 이미 유행했던 ‘귀요미 송’도 보일 수 있는 위치다. 일반인도 귀엽자고 하는 건데 그들이 못할 이유는 또 없다.

 

만약 그 아이가 한국 아이였다면 커버 무대에 대해 비난할 수 있을까? 있다면 그건 폭력적 성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기에 오히려 비난한 대중을 과하게 비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그 두 살 아이가 일본인이라고 해도 왜 그 어린아이가 공격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황당할 따름이다. 외교 홍역을 앓고 있다면 공격 대상은 당연히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 비난의 대상을 국민 개인으로 하다 보니 폭력이 당당하다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아가 극우 사회 분위기인 일본에서 막말을 하는 극우 지지자들의 말이 있다고 해도 그건 전체가 내는 말이 아니다. 극히 일부의 소리는 전체의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 사회적으로 극좌 사회가 된 한국이 더 과격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선 일본을 쉽게 비난하기도 힘들다.

 

역사적으로 치 떨리는 기억을 안고 있는 한국인으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곱게 보일 리 없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에 그 시절 기억만 안고 전체 일본인을 적으로 삼아 혐오하고 폭력을 당연하듯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광적인 폭력에 치를 떨면서. 전범국가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안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폭력을 합리화 해 정당하다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이나 우리나 다를 게 없는 존재일 터. 평화적으로 우수성을 입증하는 차원에서도 비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건 필수다.

 

그런데 굳이 일본 아동의 SNS 동요 무대 영상을 찾아 개인을 상대로 한 폭력을 행사하는 찌질이 근성을 한국 대중이 보여, 창피함은 멀쩡한 사람의 몫이 돼 버렸다.

 



국가의 외교력이 부재해 국민이 겪는 쓸모없는 갈등이 태연의 사례이기도 하다. ‘노 재팬’을 하지 않고도 원만하게 교류하는 것이 바람직한 시대상이어야 할 것이다. 아베든 스가든 극단적 외교를 펼치면, 한국은 그에 대응하는 외교를 하면 되고. 원만하게 풀 수 있으면 그때 풀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태연이 귀여운 일본 아이의 동요 무대를 커버해 영상을 공개하는 건 민간외교로 정치인이 하는 외교보다 훨씬 고급진 효과를 만들어 낸다. 극과 극의 대결이 아닌. 부드럽고 완만한 부분부터 갈등을 풀어야 극에 이른 감정은 누그러질 것이다.

 

폭력은 폭력을 만들고 혐오는 혐오를 낳는다. 갈등으로 혐오로 풀 수 있는 길은 없다. 유아퇴행적이 논리에 안 맞는다는 것은 그 말을 뱉은 본인이 더 잘 알 것이고. 여성인권 드립도 전혀 상황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무리한 수는 항상 자신을 무지하게 보이게 한다. 태연의 커버는 잘못되지 않았다. 이 사례로 비난받는 것은 부당하다.

 

<사진=태연SNS,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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