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여운이 있는 ‘꽃’ 표현을 두고, ‘당신은 여성을 혐오한 것이에요’라고 한다면 그런 이를 정상으로 봐주긴 어렵다.
또 비슷한 뜻으로 ‘그건 성추행이에요’라고 한다면, 그 또한 정상으로 볼 수는 없다.
명확히 상대를 추행이나 비하하는 ‘꽃 표현’이었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상대를 존경하며 한 말까지 특수한 상황에 끼워 맞춰 그 말은 쓰지 말라고 하는 건 어이없는 일일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런 것을 일상적으로 허용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쓸 수 있는 언어는 존재치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존경할 만한. 또 진정 아름다운 사람을. 아름다운 청춘을.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우린 ‘꽃과도 같다’, 꽃보다 아름답다’는 시적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런데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일반적인 시적 표현도 쓰지 말라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정우성은 JTBC에서 방영 중인 ‘SKY캐슬’에서 소속 배우인 염정아 연기를 두고, “꽃은 지지 않는다는 걸 온몸으로 입증하셨다”며 존경의 마음을 담아 칭찬했다.
하지만 이 말에 불편한 네티즌이, “배우님을 믿기 때문에 배우님이 하셨던 표현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시길 바라며, 그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에 대한 사과를 듣고 싶습니다. ‘꽃’이라는 표현을 비유적으로 사용하신 것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배우님의 진심이 담긴 사과를 원합니다”라고 피드백을 요청했다.
문제는 이 요청이 무리한 요구라는 점이다. 말을 들은 당사자도 아닌. 제삼자의 요구라는 것도 어이없거니와. 정우성이 쓴 말의 뜻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그저 ‘추행’, ‘비하’ 등에 포커스를 맞춰 사과를 요구한 모습은 무례하기 짝이 없어 더 황당하다.
오히려 사과를 요구한 이가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건만, 정우성은 또 사과를 했다.
“애정어린 우려가 담긴 지적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표현한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받아들인 분이 불편하다면 그 표현은 지양되고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기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차별적 표현이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보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가르침 다시 한 번 감사하고 여러분이 느끼신 불편한 감정에 깊은 유감과 사과의 마음 전합니다”라며 사과했다.
정우성의 사과는 진심일 터. 하지만 그의 진심도 무조건적인 요구에 응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차별적 표현’은 없애는 게 맞겠으나. 통상적인 시적 표현에서까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는 짧은 생각에는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표현한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받아들인 분이 불편하다면 그 표현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말도 어쭙잖게 듣고 따르는 말이어서 정우성의 대응은 낙제점이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좋고. 변화에 나서는 것도 좋지만. 상대가 불순한 의도로 접근해 받는 사과를 무조건적으로 하게 되므로, 다른 이가 원치 않게 피해를 봐야 하는 상황은 또 다른 문제를 낳기에 정우성의 대응은 어설펐다.
정우성 소셜네트워크에 단체로 몰려 가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개인이 불편해서이기보다. 어떤 무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의 소셜네트워크에 남긴 수많은 사과 요구는 좌표가 찍혀 들어와 남겨진 흔적들이 많았다.
그러한 상황에 의문을 가졌다면 보통의 경우 그런 사과를 하는 건 피했어야 한다.
정우성의 잘못이라면 불순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순수하게 사과를 했다는 점.
그러나 원 잘못은 피해망상증을 앓으며 온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이들에게 있기에 정우성을 그저 질타하기 어렵다.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막아내는 것도 건전한 시민. 건전한 대중이 할 일. 비정상인이 정상인의 언어를 재단해 자기 뜻대로 가공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다시 강조해도 피해망상과 혐오망상, 비하망상을 앓는 환자에게 정상인이 끌려 다닐 필요는 없다. 망상증 환자의 생각에 정상인이 동조한다면 이 사회는 망상증 사회가 되기에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우리 모두 앞에서 망상증 환자는 사라져야만 한다.
<사진=아티스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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