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재 ‘나의 아저씨’ 논란. ‘불편러’들이 또

방송인 유병재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호평했다고 그의 팬카페에서 비판을 받고, 이 사실이 알려지며 비난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에겐 이해 못할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유병재는 팬카페에 ‘나의 아저씨 보시는 분이 있느냐?’는 듯 글을 작성했고, 작성한 글에서 작품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작품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작품 작가님 감독님 배우님들은 하늘에서 드라마 만들라고 내려 주신 분들인가봐요. 말도 안 돼.. 김운경 작가님이 젊어지시면 이런 느낌일까.. 이런 대본을 이런 대사를 쓸 수만 있다면 정말 너무너무 좋겠네요”라고 칭찬했고, 이어 “수요일 목요일이 기다려져요”라고 글을 남겼다.


이에 팬카페 한 회원은 ‘주인공 나이 차이 너무 나서 싫어요’라고 댓글을 달았고, 또 한 회원은 ‘헐.. 그 드라마를 보신다구요? 의외네요. 폭력 그대로 나오고 정당화하고 그런 드라마 아니에요?’라고 해 유병재가 해명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유병재의 해명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단순한 로맨스 물이 아니며, 남녀 나이차에 편견을 거두고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 첫 번째 해명.

두 번째 비판성 질문에는 ‘강한 폭력이 나오긴 하는데 정당화는 아니다. 그 방법이 옳다고 장려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놈도 있는데 정말 못 되고 찌질하지 않니?’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냐며 드라마가 의도하는 바를 풀어 해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병재가 tvN <나의 아저씨>를 호평한 것은 작품에 대한 것. 하지만 유병재를 비판 및 비난을 하는 이들은 작품을 보지 않고 어느 한 장면에 대한 불편함만 호소하고 있다.


그들이 불편한 것은 작품 외적으로 보이는 ‘나이차’에 대한 불편함이고, 둘째가 ‘데이트 폭력’의 장면이 나온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 호소다. 폭력적인 장면이 보이는 것 자체가 불편하며, 그걸 방송하는 것이 폭력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해서 불편해하고 있는 것.

하지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게 아니다. 그런 불편함 가득한 세상이 있음을 보여주고 경각심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작품의 본 의도이다.

폭력 장면을 보여주는 건 폭력을 저지르라고 하는 게 아니다. 폭력을 행하는 악인이 행동에 따른 처벌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보여주는 것이다. 드라마는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보여지는 것이다.

그들이 데이트 폭력의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을 내듯, <나의 아저씨>는 드라마로 보일 수 있는 또 다른 표현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에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다.


인물의 개연성. 사건의 개연성을 보여주기 위한 표현이 거세된 작품은 작품으로서 가치가 없어, 그들은 불편해도 허용되는 상상 안에서 사실적인 표현을 해야만 한다.

<나의 아저씨> 속 데이트 폭력 장면이 나왔다고 해서, ‘폭력을 정당화하고자 연출한 것이다’라고 바라보는 것은 우둔한 행위다.

아이유가 맡은 이지안이란 인물이 ‘아저씨’라 불리는 이와 연결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도 현실을 외면한 불편함일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나이차이로 연애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작품이 개인의 판타지를 모두 만족하기란 불가능하며, 현실조차 그들의 판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

작품이 시작되며 ‘로리타 논란’이 일어난 것은 아이유에 대한 부분적인 오해와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불만에서 일어난 논란이고, 작품이 그것을 표현하고자 한 게 아니기에 그들의 불편함을 모두 해결해줄 수 없는 것이 <나의 아저씨>다. 또한, 유병재가 호평한 것도 그들이 여기는 불편함과는 다른 작품적 우수성에 대한 호평일 뿐 불편해할 일이 아니다.

필자도 작품의 전체 플롯이 우수하다고 칭찬했는데, 작품 속 일부 장면이 불편하다고 그 작품이 안 좋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당연히 유병재 이상으로 반박할 수밖에 없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건 ‘사람 이야기’인데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해 ‘로리타’니 어쩌니 하고 있는 것이 대중의 수준이라면 수준낮아 일일이 대응하기도 힘들다.


작품은 푸른 숲을 가리키는 데, 우매한 일부 대중은 썩은 나뭇가지 하나를 가리키며 어둠의 숲이라 외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나의 아저씨>에서 보이는 폭력적인 장면은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작품은 해당 장면이 정당하다고 하는 게 아닌 문제점을 재연해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것이기에 비난할 일이 아니다. 다수의 대중은 유병재처럼 작품을 쉽게 이해한다. 이해를 못하는 ‘불편러’의 문제이지 유병재의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팬카페 비판 회원 중에는 ‘한남’이라는 단어를 당당히 쓰는 남혐러(메갈)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 논란은 그가 많이 억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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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지나가는 길입니다
    2018.04.30 15:26 신고

    글 잘 읽고 갑니다. 사건의 전말을 잘 몰랐는데 정리하신 내용을 보고 어떤 내용이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옛날 90년대에 몇몇 어른들이 '지존파'가 영화를 보고 살인 방법 등을 배웠다고 말한 것을 두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화나 드라마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 것하고 같은 맥락인 것 같네요. 텍스트에서 비텍스트적인 것을 읽어냈을 때 진정한 감상이 가능할 텐데, 말씀하신 것처럼 일부 표현된 부분에 집중하여 그 작품에 대한 호평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제가 학창시절에 <삼국지>가 폭력적인 것은 물론이고, 음흉하고 비열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삼국지>의 진정한 가치는 그들의 흥망성쇄를 통해서 반면교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배운 적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만약 유병재 씨의 호평을 비평하기 위해서는 유병재 씨가 호평한 부분에 대한 논리적 반박을 제대로 했어야 하는 것 같구요.. 그런 점에서는 일단 비난하고 보는 불편러의 양상이 나타났다고도 보이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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