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 이외수 전영자 부부 내조법 놀랍다
- [토크] 방송, 문화, 연예
- 2011. 5. 3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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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와 그의 아내 전영자 부부의 삶을 과연 누가 따라할 수 있을까? 그것은 따라할 수 있는 영역의 삶이 아니리라 생각이 든다. 누가 가난을 따라하고 싶어 할 것이며, 누가 그런 형편의 남편을 원 없이 사랑하며 내조를 할 수 있을지.. 그것은 아무리 상상을 해도 감히 누가 그 깊이의 행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리라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무조건적인 희생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행하는 이 부부의 삶은 참으로 괴이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아니 어떻게 어느 시기에는 아무것도 벌지 못하는 데도 아내가 짜증 한 번 제대로 내지 않고, 남편의 기를 살려줄 수 있는지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생각도 못 할 삶들이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이 정도가 되면 사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렇게 아내의 기 살려주기의 힘이 있었을까? 이외수는 곧 죽어도 기 하나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죽은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는가" 라는 그의 막히지 않는 한 마디는 평소에 가지고 있지 않다면 쉽게 나올 말이 아니었다. 기자로 많이 벌지는 않지만, 편히 살 수도 있었던 삶을 포기하고 소설가가 되어 방랑의 삶을 살고, 배를 곯아가면서 살아가는 그에게 있어서 그나마 소설가로 꿈을 포기하지 않고 현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삶을 이해해주는 이가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일 테다.
항상 힘이 들 때 옆에 있어주던 아내가 있었기에 이외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철이 없어 보이는 남편의 글사랑 외도를 바라보면서 속이 터질 수 있었지만, 묵묵히 소설가로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남편을 내조한 것은 다 표현하지 못 할 만큼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외수의 가난한 삶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번 <놀러와>에서 어느 정도 표현이 된 것 같다. 40대 초반까지 굶고 살았다는 가볍게 하는 말은 단지 허언이 아니었다. 글을 쓰면 몇 날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않는 습관도 있었지만, 그런 습관이 생긴 것도 어쩌면 자신의 부족한 삶에서 나온 버릇은 아니었는지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까지 병적으로 계란을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때도 쉬이 납득이 될 수 없는 이야기의 시작이었지만,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는 힘든 삶이 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힘들게 살던 자신이 아버지를 위해 담배꽁초를 주워다 주며, 어느 날 길에 버려진 삶은 달걀을 흙만 좀 털어내고 먹었는데..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기억으로 남았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보름씩 굶었다고 하는 말을 과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도 그늘진 곳에서 이 못지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없지 않겠지만, 일반적인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안 먹어 버릇해서 생긴 것일 수도 있지만, 그에게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없는 편이라고 한다. 뭐 사실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허기를 이겨내지 못 할 것은 분명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쉽게 떨쳐내기 힘든 것이 바로 허기이기 때문이다. 심할 정도로 음식에 대한 집착이 없어서인지, 오죽하면 아내 전영자 씨가 밥 한 그릇 더 달라고 하는 사람을 좋아할 정도라고 하니 평소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는 화천군에서 집필 공간을 마련해 주어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가지만, 그런 삶도 편안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그냥 오는 손님맞이 하는 정도가 딱 좋았을 삶에.. 어느 덧 그 사람의 삶의 공간이 유명해지며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오고가며 부딪치는 삶은 꽤나 피곤해 보였다.
심지어 글을 쓰는 도중에도.. "창문을 열고 머리를 들이 밀 때는 뿅망치로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그의 말은 장난스레 표현을 했지만, 우리네가 생각할 때 정말 어이없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방문객이 곧 자신의 남편 이외수의 독자라고 생각이 되어 함부로 하지 못하고, 떠받들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전영자 씨의 이해를 하는 모습은 해탈을 한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일반 사람이었다면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울화통이 터졌을 법한데도.. 그녀는 곧 나의 손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놀라웠다.
전영자 씨의 내조는 실로 놀라웠다. 남편이 일단 바라는 것은 허무맹랑한 요구만 아니면 최선을 다해서 들어주는 식이었다. '술집에 가서 무일푼으로 술을 먹어도 연락만 해 놓으면 돈을 꾸어서 라도 달려가는 내조', '새 양말을 신고 싶다고 하니 매일 새 양말을 사서 대령하는 내조', '집필하는데 필요한 물건을 무리가 되어도 사주는 내조' 등 쉽게 할 수 없는 내조들이 대부분이다.
가슴이 아픈 말은 이외수의 아내가 되고, 일절 친구를 사귈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었다. 소설가의 아내가 되고, 집에서만 살아가며 듣고, 보는 것들이 나가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니 자연스레 말도 못하게 되고.. 힘든 삶에서 일정치 않은 시간들에 있어서 사귈 수 없었던 친구라는 개념은 아픔으로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한 소설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전영자 씨의 내조가 특별해 보이는 것은, 가난조차도 한 사람만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어서는 아닐까 한다. 누가 그런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리라 생각이 된다.
무조건적인 희생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행하는 이 부부의 삶은 참으로 괴이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아니 어떻게 어느 시기에는 아무것도 벌지 못하는 데도 아내가 짜증 한 번 제대로 내지 않고, 남편의 기를 살려줄 수 있는지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생각도 못 할 삶들이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이 정도가 되면 사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렇게 아내의 기 살려주기의 힘이 있었을까? 이외수는 곧 죽어도 기 하나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죽은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는가" 라는 그의 막히지 않는 한 마디는 평소에 가지고 있지 않다면 쉽게 나올 말이 아니었다. 기자로 많이 벌지는 않지만, 편히 살 수도 있었던 삶을 포기하고 소설가가 되어 방랑의 삶을 살고, 배를 곯아가면서 살아가는 그에게 있어서 그나마 소설가로 꿈을 포기하지 않고 현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삶을 이해해주는 이가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일 테다.
항상 힘이 들 때 옆에 있어주던 아내가 있었기에 이외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철이 없어 보이는 남편의 글사랑 외도를 바라보면서 속이 터질 수 있었지만, 묵묵히 소설가로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남편을 내조한 것은 다 표현하지 못 할 만큼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외수의 가난한 삶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번 <놀러와>에서 어느 정도 표현이 된 것 같다. 40대 초반까지 굶고 살았다는 가볍게 하는 말은 단지 허언이 아니었다. 글을 쓰면 몇 날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않는 습관도 있었지만, 그런 습관이 생긴 것도 어쩌면 자신의 부족한 삶에서 나온 버릇은 아니었는지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까지 병적으로 계란을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때도 쉬이 납득이 될 수 없는 이야기의 시작이었지만,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는 힘든 삶이 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힘들게 살던 자신이 아버지를 위해 담배꽁초를 주워다 주며, 어느 날 길에 버려진 삶은 달걀을 흙만 좀 털어내고 먹었는데..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기억으로 남았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보름씩 굶었다고 하는 말을 과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도 그늘진 곳에서 이 못지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없지 않겠지만, 일반적인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안 먹어 버릇해서 생긴 것일 수도 있지만, 그에게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없는 편이라고 한다. 뭐 사실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허기를 이겨내지 못 할 것은 분명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쉽게 떨쳐내기 힘든 것이 바로 허기이기 때문이다. 심할 정도로 음식에 대한 집착이 없어서인지, 오죽하면 아내 전영자 씨가 밥 한 그릇 더 달라고 하는 사람을 좋아할 정도라고 하니 평소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는 화천군에서 집필 공간을 마련해 주어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가지만, 그런 삶도 편안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그냥 오는 손님맞이 하는 정도가 딱 좋았을 삶에.. 어느 덧 그 사람의 삶의 공간이 유명해지며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오고가며 부딪치는 삶은 꽤나 피곤해 보였다.
심지어 글을 쓰는 도중에도.. "창문을 열고 머리를 들이 밀 때는 뿅망치로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그의 말은 장난스레 표현을 했지만, 우리네가 생각할 때 정말 어이없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방문객이 곧 자신의 남편 이외수의 독자라고 생각이 되어 함부로 하지 못하고, 떠받들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전영자 씨의 이해를 하는 모습은 해탈을 한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일반 사람이었다면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울화통이 터졌을 법한데도.. 그녀는 곧 나의 손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놀라웠다.
전영자 씨의 내조는 실로 놀라웠다. 남편이 일단 바라는 것은 허무맹랑한 요구만 아니면 최선을 다해서 들어주는 식이었다. '술집에 가서 무일푼으로 술을 먹어도 연락만 해 놓으면 돈을 꾸어서 라도 달려가는 내조', '새 양말을 신고 싶다고 하니 매일 새 양말을 사서 대령하는 내조', '집필하는데 필요한 물건을 무리가 되어도 사주는 내조' 등 쉽게 할 수 없는 내조들이 대부분이다.
가슴이 아픈 말은 이외수의 아내가 되고, 일절 친구를 사귈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었다. 소설가의 아내가 되고, 집에서만 살아가며 듣고, 보는 것들이 나가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니 자연스레 말도 못하게 되고.. 힘든 삶에서 일정치 않은 시간들에 있어서 사귈 수 없었던 친구라는 개념은 아픔으로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한 소설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전영자 씨의 내조가 특별해 보이는 것은, 가난조차도 한 사람만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어서는 아닐까 한다. 누가 그런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리라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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