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아가 순정녀라고? 어찌 그런 소리를
- [토크] 방송, 문화, 연예
- 2011. 5.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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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가 '순정녀'라고? 이 무슨 이상한 소리던가! 갑자기 그녀를 포장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급히 상황을 정리하고, 다음 활동을 위한 포석으로 움직이는 대외 이미지 관리인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급포장이었다. 심지어는 순애보 같은 사랑을 한 여성으로 포장하는 짓까지 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남아있던 정도 떨어지게 만드는 기사들임에는 분명했다.
너무도 급작스러웠다. 약 10여 일간의 짧고도 긴 여정의 '서태지'와 '이지아'의 사건은 전국의 대중들을 일대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 입에서 '서태지'의 사건은 진짜 그 어느 사건보다도 크게 다루어졌다. 너무도 급작스럽고, 대파란을 불러왔기에 조금이라도 그 대열에 끼지 않고 지켜보는 상황이었지만, 그 사건의 상처는 깊게도 긁혀서 가슴에 남아있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본인들이 가장 큰 충격과 파장 속에서 힘들었겠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이 힘든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들 한 명 한 명을 사랑하던 팬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대중들에게는 일종의 배신이며,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아픈 상처들을 연이어 만들게 되었다.
맨 처음 4월 21일 세간의 이상한 낌새를 숨기려 한다는 소문과 함께 나온 이 사태는 그 파장이 한 세기를 대표하는 엄청난 파워를 지니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 대처는 파장과는 달리 진행이 되었다. 거의 모든 언론들의 기사들은 공상과학소설을 써 내려갔고, 어처구니없는 기사들로 매일매일 신문을 장식했다.
떠도는 소문은 곧 사실인 냥 포장이 되었고, '무엇은 아닌가'라는 질문과 답 속에서 엉뚱한 거짓 기사들이 사실인 냥 유통이 되는 구조가 진행이 되었다. '심은경이 이들의 딸이다'라는 설. '구혜선이 서태지의 연인이다'라는 설. '구준엽이 소개를 해 줬다'는 설. '전인화가 연예계 데뷔에 힘 써줬다'는 설.. 등 온갖 밝혀지지 않은 추측성 이야기들이 대량 유통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온갖 괴상한 공상과학 기사들이 나가는 사이에도 '이지아'와 소속사 측은 적극적인 방어모드를 앞세우며, 매 소문마다 그것은 아니라는 말로 방어를 한다. 그러나 그 방어가 뛰어난 모양새는 전혀 아니었다. 어린 나이였던 1993년 처음 만나, 다시 만난 1996년을 지나 1997년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는 말은 여러 호사가들에게 오해를 사기 좋은 입방정의 단초를 제공했다. 1996년이 19세였으니, 1993년은 도대체 몇 살인가. 이렇게 짧게 이야기를 한 것은 여러모로 자신을 안 좋게 이미지를 흡수하게 만들었다.
사건이 알려지며 그녀는 대중들의 욕을 먹기 시작한다. 그것은 첫 소송이 알려지면서였는데, 그 소송 과정에 위자료 5억과.. 재산분할로 50억, 총 55억을 청구하는 엄청난 소송의 장본인이 되었다는 것에 대중들의 일부는 양쪽으로 갈려 서로를 욕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태지'는 말이 없었다. '이지아' 측은 본인과 함께 가족, 소속사들이 방어를 하면서 '사랑은 했지만, 성격차이는 극복하기 힘들었다'는 말로 이혼을 이해시키며 적당한 방어를 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별 욕은 먹지 않았단 때였다. 비록 소송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결혼과 이혼이 조금은 납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좋게 보려는 상황은 그때까지였다.
이후 MBC에서 그들의 이혼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조금씩 '이지아'는 더 큰 비난에 처한다. 실제 이혼이 성립된 시기가 '서태지' 쪽이 주장을 하는 2006년이 옳았다는 사실들이 드러나고, '이지아' 측이 내세운 2009년 설은 따라서 거짓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지아'가 결정적으로 가장 대중들에게 욕을 먹는 이유는 결혼과 이혼의 문제도 있었지만, 현재 사귀고 있던 '정우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대중들의 시선은 차갑게 변해갔다. 도대체 '정우성'은 무슨 죄이기에 그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팬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대중들이 그 모습에는 혀를 내두르며 그녀를 좋게 봐주지 않게 되었다.
상처를 입은 '정우성'은 당분간 휴식을 하겠다는 말도 하며 그를 바라보는 대중들을 아프게 했고, 그의 생일은 슬픔으로 덮여 버렸다. 결혼과 이혼 사실을 적어도 연인이었던 '정우성'에게만은 알렸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지아는 정당화 되지 않는 비난을 받게 된다.
그 이후 '이지아'는 두 단계로 실망감을 주게 되는데, 그것은 MBC가 입수해서 보도한 이혼 서류에 대한 해석을 오해하며 받아들였다는 핑계를 대면서 한 번 실망감을 주고.. 이어 결정적으로 '서태지'가 이 사실에 대해서 보도자료를 내면서 그녀는 최종 실망감을 주게 된다.
'서태지'는 자신의 사건을 알리면서 매우 좋은 모습으로 알린 것에 비해, '이지아'는 동정론을 얻고자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기에 욕을 정면으로 얻어먹게 된다. '서태지'는 1996년 은퇴 후 평범한 생활을 소망했기에, 최소한의 보금자리와 처음으로 누려보는 평범한 일상을 꿈꾸고 보호받으며 살기위해 새 생활을 계획했다'는 말을 하며 차근차근 이해시켜 나갔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 안정을 찾고, 확신이 생길 때 팬들에게도 알리고 축복을 받으려 했지만, 2000년 이혼을 한 뒤 이미 헤어진 상태에서 상대방을 세상에 발표 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하지 않았다'는 극히도 당연한 배려의 이유를 이야기했다. 인간적인 배려가 섞인 보도자료임에 누구도 아니라고 말을 못 할 '서태지'의 이야기는 그렇게 많은 이들을 이해시켰다.
하지만 '이지아'는 가만히 있었어도 되는 시기에 '순정녀'는 커녕, 그와 반대되는 이미지로 변신해버리는 말을 한다. "아무에게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던 그 사람의 뜻을 존중하고 따랐던 것.. 그것이 사랑이라 믿었던 저는 부모님도 제 자신도 버리고 살았다. 제가 선택한 그 길이 제 자신을 상처내고, 고통받게 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또 "어린 시절이었지만 믿음과 희망으로 사랑을 했고, 그 나이에 가져야 할 소중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지만 단 한 번도 그 사랑에 대해 가슴이 아닌 머리로 계산한 적 없었다"고 말을 한다.
대체 이 말과 '순정녀'라는 말이 이어지기나 할까?!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고작 자신은 그저 사랑하던 사람의 말에 따라서 숨어 지내야 했다는 뉘앙스의 말과, 왠지 엄청난 것에 숨을 죽이며 살아야만 하던 사람인 냥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 그녀의 진실 되지 못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사랑했던 남자라고 했던 '서태지'를 두고, 이미 케케묵은 일을 꺼내어 소송을 진행하면서 그것은 사랑이었네! 라고 말을 하는 것이 과연 진심이 담긴 말인지가 의아하다.
당시 사랑했지만, 이제 헤어져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소송을 걸고.. 다시 사랑하게 된 이에게는 달콤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던 그 과정들이 과연 대중을 충분히 이해시킬 일인지 참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말을 않던 당사자가 이야기를 하자마자 단지 더 이상 주변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안 되어 소송을 취하한다는 말을 했던 그녀는 이제 일부 언론들에 의해서 '순정녀'와 '순애보 사랑'을 한 여인으로 각색되어 소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단지 바보처럼 그들이 둘러대는 말에 맞춰 생각하는 머리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 어이없음에 화가 나기도 한다.
너무도 급작스러웠다. 약 10여 일간의 짧고도 긴 여정의 '서태지'와 '이지아'의 사건은 전국의 대중들을 일대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 입에서 '서태지'의 사건은 진짜 그 어느 사건보다도 크게 다루어졌다. 너무도 급작스럽고, 대파란을 불러왔기에 조금이라도 그 대열에 끼지 않고 지켜보는 상황이었지만, 그 사건의 상처는 깊게도 긁혀서 가슴에 남아있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본인들이 가장 큰 충격과 파장 속에서 힘들었겠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이 힘든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들 한 명 한 명을 사랑하던 팬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대중들에게는 일종의 배신이며,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아픈 상처들을 연이어 만들게 되었다.
맨 처음 4월 21일 세간의 이상한 낌새를 숨기려 한다는 소문과 함께 나온 이 사태는 그 파장이 한 세기를 대표하는 엄청난 파워를 지니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 대처는 파장과는 달리 진행이 되었다. 거의 모든 언론들의 기사들은 공상과학소설을 써 내려갔고, 어처구니없는 기사들로 매일매일 신문을 장식했다.
떠도는 소문은 곧 사실인 냥 포장이 되었고, '무엇은 아닌가'라는 질문과 답 속에서 엉뚱한 거짓 기사들이 사실인 냥 유통이 되는 구조가 진행이 되었다. '심은경이 이들의 딸이다'라는 설. '구혜선이 서태지의 연인이다'라는 설. '구준엽이 소개를 해 줬다'는 설. '전인화가 연예계 데뷔에 힘 써줬다'는 설.. 등 온갖 밝혀지지 않은 추측성 이야기들이 대량 유통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온갖 괴상한 공상과학 기사들이 나가는 사이에도 '이지아'와 소속사 측은 적극적인 방어모드를 앞세우며, 매 소문마다 그것은 아니라는 말로 방어를 한다. 그러나 그 방어가 뛰어난 모양새는 전혀 아니었다. 어린 나이였던 1993년 처음 만나, 다시 만난 1996년을 지나 1997년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는 말은 여러 호사가들에게 오해를 사기 좋은 입방정의 단초를 제공했다. 1996년이 19세였으니, 1993년은 도대체 몇 살인가. 이렇게 짧게 이야기를 한 것은 여러모로 자신을 안 좋게 이미지를 흡수하게 만들었다.
사건이 알려지며 그녀는 대중들의 욕을 먹기 시작한다. 그것은 첫 소송이 알려지면서였는데, 그 소송 과정에 위자료 5억과.. 재산분할로 50억, 총 55억을 청구하는 엄청난 소송의 장본인이 되었다는 것에 대중들의 일부는 양쪽으로 갈려 서로를 욕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태지'는 말이 없었다. '이지아' 측은 본인과 함께 가족, 소속사들이 방어를 하면서 '사랑은 했지만, 성격차이는 극복하기 힘들었다'는 말로 이혼을 이해시키며 적당한 방어를 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별 욕은 먹지 않았단 때였다. 비록 소송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결혼과 이혼이 조금은 납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좋게 보려는 상황은 그때까지였다.
이후 MBC에서 그들의 이혼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조금씩 '이지아'는 더 큰 비난에 처한다. 실제 이혼이 성립된 시기가 '서태지' 쪽이 주장을 하는 2006년이 옳았다는 사실들이 드러나고, '이지아' 측이 내세운 2009년 설은 따라서 거짓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지아'가 결정적으로 가장 대중들에게 욕을 먹는 이유는 결혼과 이혼의 문제도 있었지만, 현재 사귀고 있던 '정우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대중들의 시선은 차갑게 변해갔다. 도대체 '정우성'은 무슨 죄이기에 그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팬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대중들이 그 모습에는 혀를 내두르며 그녀를 좋게 봐주지 않게 되었다.
상처를 입은 '정우성'은 당분간 휴식을 하겠다는 말도 하며 그를 바라보는 대중들을 아프게 했고, 그의 생일은 슬픔으로 덮여 버렸다. 결혼과 이혼 사실을 적어도 연인이었던 '정우성'에게만은 알렸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지아는 정당화 되지 않는 비난을 받게 된다.
그 이후 '이지아'는 두 단계로 실망감을 주게 되는데, 그것은 MBC가 입수해서 보도한 이혼 서류에 대한 해석을 오해하며 받아들였다는 핑계를 대면서 한 번 실망감을 주고.. 이어 결정적으로 '서태지'가 이 사실에 대해서 보도자료를 내면서 그녀는 최종 실망감을 주게 된다.
'서태지'는 자신의 사건을 알리면서 매우 좋은 모습으로 알린 것에 비해, '이지아'는 동정론을 얻고자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기에 욕을 정면으로 얻어먹게 된다. '서태지'는 1996년 은퇴 후 평범한 생활을 소망했기에, 최소한의 보금자리와 처음으로 누려보는 평범한 일상을 꿈꾸고 보호받으며 살기위해 새 생활을 계획했다'는 말을 하며 차근차근 이해시켜 나갔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 안정을 찾고, 확신이 생길 때 팬들에게도 알리고 축복을 받으려 했지만, 2000년 이혼을 한 뒤 이미 헤어진 상태에서 상대방을 세상에 발표 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하지 않았다'는 극히도 당연한 배려의 이유를 이야기했다. 인간적인 배려가 섞인 보도자료임에 누구도 아니라고 말을 못 할 '서태지'의 이야기는 그렇게 많은 이들을 이해시켰다.
하지만 '이지아'는 가만히 있었어도 되는 시기에 '순정녀'는 커녕, 그와 반대되는 이미지로 변신해버리는 말을 한다. "아무에게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던 그 사람의 뜻을 존중하고 따랐던 것.. 그것이 사랑이라 믿었던 저는 부모님도 제 자신도 버리고 살았다. 제가 선택한 그 길이 제 자신을 상처내고, 고통받게 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또 "어린 시절이었지만 믿음과 희망으로 사랑을 했고, 그 나이에 가져야 할 소중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지만 단 한 번도 그 사랑에 대해 가슴이 아닌 머리로 계산한 적 없었다"고 말을 한다.
대체 이 말과 '순정녀'라는 말이 이어지기나 할까?!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고작 자신은 그저 사랑하던 사람의 말에 따라서 숨어 지내야 했다는 뉘앙스의 말과, 왠지 엄청난 것에 숨을 죽이며 살아야만 하던 사람인 냥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 그녀의 진실 되지 못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사랑했던 남자라고 했던 '서태지'를 두고, 이미 케케묵은 일을 꺼내어 소송을 진행하면서 그것은 사랑이었네! 라고 말을 하는 것이 과연 진심이 담긴 말인지가 의아하다.
당시 사랑했지만, 이제 헤어져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소송을 걸고.. 다시 사랑하게 된 이에게는 달콤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던 그 과정들이 과연 대중을 충분히 이해시킬 일인지 참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말을 않던 당사자가 이야기를 하자마자 단지 더 이상 주변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안 되어 소송을 취하한다는 말을 했던 그녀는 이제 일부 언론들에 의해서 '순정녀'와 '순애보 사랑'을 한 여인으로 각색되어 소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단지 바보처럼 그들이 둘러대는 말에 맞춰 생각하는 머리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 어이없음에 화가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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