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 질곡의 세월 보낸 김태원의 슬픔
- [토크] 방송, 문화, 연예
- 2011. 3. 3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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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김태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만 눈물이 나버렸다.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누구의 말에 눈물이 나는 경험은 살면서 많지 않은데, 이번에는 왜 그렇게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 이상의 아픔을 가진 것처럼 아파오는지 가슴이 먹먹함을 느끼고 답답함이 동반이 되었다.
제목으로 표현한 '질곡의 세월'이란 말은, 뜻으로 보자면 '마음과 몸이 몹시 속박하여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의 뜻을 가졌는데도 표현한 것은, 그만큼 '김태원'이 얼마나 많은 아픔과 번뇌, 고독들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 스스로를 아프게 했는지,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게 해 주는 말이었기에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그저 그가 음악인으로서 평탄한 삶을 살아가고, 연예인이기에 아무 걱정거리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들도 우리네와 똑같은, 아니 더 심각하게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는 가슴 절절히 보여주었다. 정말 놀라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동안 그가 쉬쉬하며 밝히지 않았던 가족사를 이야기하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시청자에게 느끼게 했다.
그동안 누구도 알지 못했던 아픔의 가족사는 왜 아내가 한국이 아닌 필리핀에서 살아가는지, 왜 기러기 아빠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구구절절 설명이 되어 더욱 가슴 아파오게 했다. 지금까지는 조기 유학을 떠난 정도의 가족사라고만 알던 그의 가족사들이 사실은, 마음의 병을 가진 둘 째 아들의 병 때문에 떨어져 살아야 하는 눈물의 가족사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더욱 큰 아픔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거듭된 그의 아픔은 하나의 큰 아픔이 아니었다. 인생을 살아오며 가장 충격적인 일들을 몰아서 겪는 그의 아픔이었기에 그 슬픔과 깊이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어느 정도 이상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알린 것은 그를 좀 더 알게 했고, 그의 아픔이 무엇에 가려졌다는 것을 느꼈던 궁금증에서 하나를 더 아는 계기가 되었고, 더욱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김태원의 아픔은 우리가 알던 것으로 생각할 때, 몇 가지가 안 되었다. 그 중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부활 멤버였던 '김재기'를 잃은 슬픔과, 자신을 한 때 조절하지 못하고 환.각.제에 빠져 고통이었던 시절, 이승철과의 불화, 평탄치 못했던 그룹 부활의 성장기로 나눌 수 있다. 거기에 지금까지 아내와 떨어져 사는 정도만이 알려진 상태였다.
그런데 그 아픔 중에 별것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던 아내와 가족들이 떨어져 사는 것에 큰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내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김태원의 아픔 중에 제일 큰 아픔은 현재이며 그 현재의 이야기는 약간만 늦추고, 그의 인생 중에 첫 아픔의 시기를 먼저 이야기 해 본다. 그가 받은 첫 아픔은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성의 형성을 가지는 유년시절의 이야기였다.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받던 아이가 첫 학교라는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오래 생활을 하지도 않고, 그저 숙제를 안 하고, 남들보다 씻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받은 구타성 체벌의 충격은 그의 첫 인생을 갈갈히 찢어놓았다.
인성이 여린 그 어린 나이에 단체 속에서 크나 큰 창피함을 느낄 정도로, 아니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체벌을 당한 것은 살면서 가시지 않는 충격의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단지 씻지 않고, 숙제를 안 해 갔다는 이유로 따귀를 반 친구들이 다 보는데 에서 칠판 위치부터 교실 뒷벽까지 몰리며 맞은 따귀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를 시켜놓았다. 비뚤어지지 않고 클 수 있었던 아이를 시작부터 싹을 죽여버린 그 선생님의 대처는 방송을 보는 시청자를 화가 나서 미칠 지경까지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서 김태원은 학교라는 곳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아이로 성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집에서 나와 학교는 가는데, 그 학교를 들어가지 못하고.. 공포와 두려움, 증오 등이 복합이 되어 학교 주변만을 크게 둘러서 망설이며 배회만 했다는 말은 그 아픔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했다.
그가 인생을 살면서 자신에게 약속한 첫 번째 약속 '욕을 하지 말자'라는 것을 볼 때에도, 그의 말은 중3 이후로 욕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있다. 아니 도대체 그 시절 중3 전에 욕을 얼마나 했기에 이런 약속을 스스로 했겠는가?!를 상상하면 의도치 않은 방황을 너무 빨리 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만약 그가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비뚤어진 아이가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학교라면 '학'자만 나와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싫어하는 아이가 김태원이었다고 한다. 학교의 향만 느껴도 싫은 아이. 연필 냄새조차도 싫게 만들었던 그 날의 기억들은 한 아이의 인성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런 선생님의 따돌림을 겪은 김태원이 <위대한 탄생> 제자들에게 잘 해주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당한 시선과 비슷한 시선을 받는 그들에게 잘 해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없이 많은 일을 겪어온 그에게 아픔은 끝나지 않았다. 바로 자신의 아들이 아프다는 것. 그것은 그 자신을 빠져 나올 수 없는 아픔으로 몰아넣게 된다. 지금까지 아내와 떨어져 사는 것을 단지 조기유학으로 이야기하며 눈총을 조금은 받던 것이, 사실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청자로서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1998년 이승철과 헤어진 후, 2002년 14년 만의 만남 후. 계약 관계에서 곡이 나오지 않자 부리는 히스테리로 결국은 아내가 캐나다로 가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던 사실은 각자에게 있었고, 자신의 경우 몇 년간 수입도 없고, 큰 애는 자라고 있고, 그럴수록 현실적인 도피처는 음악이 되었다고 한다. 미친 사람처럼 녹음을 했고, 2002년 네버엔딩 스토리가 대성공을 거두었는데도 만족은 할 수 없었고, 이승철과의 갈등이 생겼고 결국은 헤어졌다고 전한다.
그러던 와중에 둘 째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낳고 2년 후에 알게 되며, 음악 활동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승철과의 갈등에서는 각자의 상황이 있긴 하지만, 자신이 미안한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며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한다. 아내가 바라는 소원 이야기였다. 김태원은 자신의 아내 소원이 '둘 째 아이보다 단 하루를 더 사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 충격을 주게 된다. 도대체 이 말이 왜 나왔을까?! 그는 잠시 말을 잃고 '제가..... 잠깐만요......'라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한다.
음악만을 고집하지 못하고, 예능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시점이 바로 이때부터였다고 한다. 그렇게 말을 간간히 이어가는 김태원은 다시 하기 힘든 말을 한다.
"저는 우현이가 더 이상 안 자랐으면 좋겠어요"
이 말에 듣는 시청자로서 가슴이 터질 듯 아픈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냥 그 상태가 좋아요"로 자조 섞인 말을 할 때에는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큰 딸이 말하길 '남들은 우리가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아빠는 유명하고 매일 파티를 할 것 같다고' 그런 말을 하는 김태원은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다. 이렇게 우리가 넷이서 마치 조난당한 사람들처럼.. 똘똘 뭉쳐 살 수 있기라도 하니" 라며 어물쩍 말을 멈춘다.
아내는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 아이 때문에 받은 상처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생긴 상처'. 사실은 그래서 지금 필리핀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은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주어 다시 한 번 눈물 나게 했다.
더 이상 그 아이처럼 같은 아픔을 받지 않게 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냈다는 김태원의 말에는 도저히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 아이같은 아이들이 많다. 단지 밖에 나오지 않는 것 뿐이다. 그것은 시선이 너무 아파서 그런 것이다" 라는 말은 이 아픔을 겪는 이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따스한 배려와 용기가 담겨 있었다. 그의 아픔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저리다.
제목으로 표현한 '질곡의 세월'이란 말은, 뜻으로 보자면 '마음과 몸이 몹시 속박하여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의 뜻을 가졌는데도 표현한 것은, 그만큼 '김태원'이 얼마나 많은 아픔과 번뇌, 고독들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 스스로를 아프게 했는지,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게 해 주는 말이었기에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그저 그가 음악인으로서 평탄한 삶을 살아가고, 연예인이기에 아무 걱정거리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들도 우리네와 똑같은, 아니 더 심각하게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는 가슴 절절히 보여주었다. 정말 놀라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동안 그가 쉬쉬하며 밝히지 않았던 가족사를 이야기하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시청자에게 느끼게 했다.
그동안 누구도 알지 못했던 아픔의 가족사는 왜 아내가 한국이 아닌 필리핀에서 살아가는지, 왜 기러기 아빠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구구절절 설명이 되어 더욱 가슴 아파오게 했다. 지금까지는 조기 유학을 떠난 정도의 가족사라고만 알던 그의 가족사들이 사실은, 마음의 병을 가진 둘 째 아들의 병 때문에 떨어져 살아야 하는 눈물의 가족사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더욱 큰 아픔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거듭된 그의 아픔은 하나의 큰 아픔이 아니었다. 인생을 살아오며 가장 충격적인 일들을 몰아서 겪는 그의 아픔이었기에 그 슬픔과 깊이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어느 정도 이상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알린 것은 그를 좀 더 알게 했고, 그의 아픔이 무엇에 가려졌다는 것을 느꼈던 궁금증에서 하나를 더 아는 계기가 되었고, 더욱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김태원의 아픔은 우리가 알던 것으로 생각할 때, 몇 가지가 안 되었다. 그 중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부활 멤버였던 '김재기'를 잃은 슬픔과, 자신을 한 때 조절하지 못하고 환.각.제에 빠져 고통이었던 시절, 이승철과의 불화, 평탄치 못했던 그룹 부활의 성장기로 나눌 수 있다. 거기에 지금까지 아내와 떨어져 사는 정도만이 알려진 상태였다.
그런데 그 아픔 중에 별것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던 아내와 가족들이 떨어져 사는 것에 큰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내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김태원의 아픔 중에 제일 큰 아픔은 현재이며 그 현재의 이야기는 약간만 늦추고, 그의 인생 중에 첫 아픔의 시기를 먼저 이야기 해 본다. 그가 받은 첫 아픔은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성의 형성을 가지는 유년시절의 이야기였다.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받던 아이가 첫 학교라는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오래 생활을 하지도 않고, 그저 숙제를 안 하고, 남들보다 씻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받은 구타성 체벌의 충격은 그의 첫 인생을 갈갈히 찢어놓았다.
인성이 여린 그 어린 나이에 단체 속에서 크나 큰 창피함을 느낄 정도로, 아니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체벌을 당한 것은 살면서 가시지 않는 충격의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단지 씻지 않고, 숙제를 안 해 갔다는 이유로 따귀를 반 친구들이 다 보는데 에서 칠판 위치부터 교실 뒷벽까지 몰리며 맞은 따귀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를 시켜놓았다. 비뚤어지지 않고 클 수 있었던 아이를 시작부터 싹을 죽여버린 그 선생님의 대처는 방송을 보는 시청자를 화가 나서 미칠 지경까지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서 김태원은 학교라는 곳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아이로 성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집에서 나와 학교는 가는데, 그 학교를 들어가지 못하고.. 공포와 두려움, 증오 등이 복합이 되어 학교 주변만을 크게 둘러서 망설이며 배회만 했다는 말은 그 아픔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했다.
그가 인생을 살면서 자신에게 약속한 첫 번째 약속 '욕을 하지 말자'라는 것을 볼 때에도, 그의 말은 중3 이후로 욕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있다. 아니 도대체 그 시절 중3 전에 욕을 얼마나 했기에 이런 약속을 스스로 했겠는가?!를 상상하면 의도치 않은 방황을 너무 빨리 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만약 그가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비뚤어진 아이가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학교라면 '학'자만 나와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싫어하는 아이가 김태원이었다고 한다. 학교의 향만 느껴도 싫은 아이. 연필 냄새조차도 싫게 만들었던 그 날의 기억들은 한 아이의 인성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런 선생님의 따돌림을 겪은 김태원이 <위대한 탄생> 제자들에게 잘 해주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당한 시선과 비슷한 시선을 받는 그들에게 잘 해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없이 많은 일을 겪어온 그에게 아픔은 끝나지 않았다. 바로 자신의 아들이 아프다는 것. 그것은 그 자신을 빠져 나올 수 없는 아픔으로 몰아넣게 된다. 지금까지 아내와 떨어져 사는 것을 단지 조기유학으로 이야기하며 눈총을 조금은 받던 것이, 사실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청자로서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1998년 이승철과 헤어진 후, 2002년 14년 만의 만남 후. 계약 관계에서 곡이 나오지 않자 부리는 히스테리로 결국은 아내가 캐나다로 가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던 사실은 각자에게 있었고, 자신의 경우 몇 년간 수입도 없고, 큰 애는 자라고 있고, 그럴수록 현실적인 도피처는 음악이 되었다고 한다. 미친 사람처럼 녹음을 했고, 2002년 네버엔딩 스토리가 대성공을 거두었는데도 만족은 할 수 없었고, 이승철과의 갈등이 생겼고 결국은 헤어졌다고 전한다.
그러던 와중에 둘 째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낳고 2년 후에 알게 되며, 음악 활동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승철과의 갈등에서는 각자의 상황이 있긴 하지만, 자신이 미안한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며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한다. 아내가 바라는 소원 이야기였다. 김태원은 자신의 아내 소원이 '둘 째 아이보다 단 하루를 더 사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 충격을 주게 된다. 도대체 이 말이 왜 나왔을까?! 그는 잠시 말을 잃고 '제가..... 잠깐만요......'라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한다.
음악만을 고집하지 못하고, 예능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시점이 바로 이때부터였다고 한다. 그렇게 말을 간간히 이어가는 김태원은 다시 하기 힘든 말을 한다.
"저는 우현이가 더 이상 안 자랐으면 좋겠어요"
이 말에 듣는 시청자로서 가슴이 터질 듯 아픈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냥 그 상태가 좋아요"로 자조 섞인 말을 할 때에는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큰 딸이 말하길 '남들은 우리가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아빠는 유명하고 매일 파티를 할 것 같다고' 그런 말을 하는 김태원은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다. 이렇게 우리가 넷이서 마치 조난당한 사람들처럼.. 똘똘 뭉쳐 살 수 있기라도 하니" 라며 어물쩍 말을 멈춘다.
아내는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 아이 때문에 받은 상처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생긴 상처'. 사실은 그래서 지금 필리핀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은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주어 다시 한 번 눈물 나게 했다.
더 이상 그 아이처럼 같은 아픔을 받지 않게 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냈다는 김태원의 말에는 도저히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 아이같은 아이들이 많다. 단지 밖에 나오지 않는 것 뿐이다. 그것은 시선이 너무 아파서 그런 것이다" 라는 말은 이 아픔을 겪는 이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따스한 배려와 용기가 담겨 있었다. 그의 아픔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저리다.
* 여러분들의 추천 한 표는 저에게 큰 힘을 줍니다. 추천쟁이는 센스쟁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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