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예능결방, 제살 깎는 문화
- [토크] 방송, 문화, 연예
- 2010. 4. 20.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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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결방이 장기화 되어 이제 어느새 3주가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 문화를 즐기는 입장의 선택권에 있어서 예능 결방이 좋은가? 에 대한 생각을 안 해 볼 수 없는 시기가 되었다. 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할까? 나름대로의 뜻이 있어서 시작한 추모 차원에서 시작된 운동이라고 하지만 없었던 새로운 문화의 시작이 그렇게 좋지 않은 현상으로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 한 마디 적게 된다. (글이 깁니다. 보고 안 보고는 자유랍니다^^)
그깟 예능 안 보면 어떠냐?! 네게 닥친 일이라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겠냐?! 웃지 못해 환장한 xx~! 등등 이러한 말을 할 때 가장 많이 대두되는 말이기도 하다. 딱 이 말만 놓고 보면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국가적으로 아주 큰 일이 있기에 전체 분위기가 안 좋은 때에 추모를 하는 입장에서 웃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이런 개인감정의 자유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
참으로 모순적인 말이라고 생각하는 때가 많다.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에 나라의 사건이 일어나고 단 한 번도 웃지 않았고, 예능이 아닌 드라마나 일상에서 웃지 않은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만약 이런 말을 한 사람들에게 거꾸로 길거리를 가거나 일상생활 속에서 웃고 있는데, 지나는 사람이 '당신 이 시간에 웃음이 나와? 국가적으로 안 좋은데~'라고 말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네 죄송합니다. 당분간 웃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가? 그렇게 물어보고 싶다.
수일 전 가수 김C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개인적인 생각을 한 마디 쓴 것이 기사로 나오면서 많은 화를 입기도 했다. 그가 한 말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다... 스포츠도 되고, 영화도 되고, 드라마도 되고, 예능은 안 되고 웃지 말란 뜻인가? 이헌령 비헌령" 이라고 적은 것이다.
이 말에서 '이헌령 비헌령' 이라 함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의 뜻이며,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가져다 붙일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된 뜻이다.
이는 바로 기사화가 되며 그가 한 말을 가지고 인정도 없는 xx라니, 뭐니 하면서 위에 했던 공격들을 해 댔다. 그런데 시청자들이나 네티즌.. 그리고 넘어서 방송 관계자들도 이중적인 잣대로 스스로 원하는 쪽으로 뜻을 가져다 쓰는 판국이라 그 씁쓸함은 클 수밖에 없다.
왜 이중적인 잣대라 하는가?
시청자들과 그 속의 네티즌들은 인터넷이나 여론으로 어느 순간부터 이런 사회적 문화적 현상을 당연시 하며, 요구를 하는 단계가 되었다. 그런데 겉보기가 반질반질한 먹기 좋은 사과의 모습을 바라는 듯하다. 속은 곪았어도 겉만 번지르한 사과의 모습을 말이다. 사실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겉치레를 빼놓고는 웃고 싶은 것을 찾아다니며 웃고 있고, 추모의 마음은 현실의 상황에서 100% 중 10% 이하의 생각을 가지면서도 마치 자신은 80% 이상 추모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처럼 행동을 한다.
공중파에서 보이는 웃음이 있는 예능은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현실에서의 모습으로는 웃음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웃으며, 스트레스를 풀 것을 찾아 헤매며 푼다. 잠깐 예능 하는 시간을 피해서 몇 주 피해를 보더라도 안 보겠다고 하며 다른 곳에서 웃고 있다. 분명 웃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웃으면서도 TV로 보이는 겉모습의 예능 웃음에는 각박한 잣대를 들이댄다.
방송사 또한 마찬가지다. 방송사는 이런 문화에 맞추고자 하는 마음에 추모기간 동안 예능을 자제하겠다고 발표를 하고 나서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체 기약 없이 방송을 미루고 있다. 그런데 자신들이 겉보기에 좋아 보이라고 참여한 것들이 이제는 하고 싶어도 못하고, 설령 하더라도 욕을 먹는 단계로 바로 자신들이 던진 부메랑에 머리를 강타 당하듯 뭇매를 맞고 있다.
어디부터 시작된 문화인가?
한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일로 남을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을 해서 서거를 한 일이 있다. 한국은 이때부터 추도문화가 바뀌기 시작했다. 국장을 하며 해당되는 기간에 예능을 자제하겠다고 서로 약속을 하고 시청자들에게 알리며 시작된 문화가 지금까지 반복이 되고 있다. 이 사건은 절대 있어서 안 될 애통한 사건이었다. 이때는 자연사가 아닌 자살이었기에 그 충격은 대단했고, 사회적으로 그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기에 방송사까지도 같이 참여를 했던 것이다. 이때 까지는 그래도 목적성이 뚜렷했기에 무조건 이해를 한다.
시작은 故노무현 대통령으로 시작했지만, 이 문화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그 다음 故김대중 대통령 까지도 이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이때부터 더 커지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예능을 자제하겠다고 하는 것이 어느새 당연시 되며, 모든 예능 프로그램이 올스톱 되는 일이 빈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에도 전체 예능이 올스톱 하기는 했지만 분명 상황은 다른데도 단 하나의 예외성 없이 그대로 새로운 추도 문화가 전수가 되었다. 이는 이전 대통령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나면 이제는 당연히 예능은 하면 안 되는 죽일 짓이 되어가기 시작하며 '천안함 사고'가 일어나면서 예외 없이 또 그렇게 예능은 결방이 시작이 되었다. 이 천안함 사고는 사건이 해결이 될 모습도 안 보인 채 안개국면에서 빠져 나오질 못하고 표류하는 동안 예능은 벌써 3주 째 결방이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중간에 평일이나 특정 방송사는 간간히 하나씩 재개를 하려 했지만, 여지없이 욕을 얻어먹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천안함' 함미 부분이 올라오고 전사자들이 생기면서 예능 결방은 이제 당연하게 되었고, 방송사는 스스로 자제를 하겠다고 시작한 것이 자제가 아닌 당연함으로 몰려가고 말았다.
이제는 예능을 방송사가 하고 싶어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좋아 하자고 시작했지만 결과는 스스로의 목을 옥죄는 수단으로 전락을 해 버리며 그들은 한 주 한 주 시름만 더해 가고 있다. 예능 결방은 시청자들도 볼 권리를 빼앗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방송사 차원에서도 한 주 방송이 안 될 때마다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은 이루 말 할 수가 없기도 하다.
문화의 특성에 맞는 행동과 편성이 있었으면..!
예능은 말 그대로 예능이며, 뉴스는 뉴스이고, 드라마는 드라마,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 그 자체고 특성이 있는 분류 방식으로 정의가 된다. 뉴스에서는 뉴스에서 다뤄야 할 것을 다루는 것이 맞고, 예능에서는 예능다운 웃음을 가져야 한다. 예능에서 웃음이 아닌 추도의 애통함을 전하는 것이 예능이 아니다. 그래서 예능을 결방하는 것 아니냐? 그것은 하나의 분류나 선택을 어느 순간에 없애는 것과 같다. 슬퍼하자고 웃음을 없앤 이상한 일인 것이다.
특성에 맞게 조율을 하면 될 것을 가지고, 조율이 아닌 편성 제외를 한다는 것 자체는 스스로의 소(小)와, 많은 대중들의 대(大)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질 못한다. 사안이 시급한 나라의 문제들이 생기면 편성을 조율해서 시간대를 옮기는 것도 방법이고 확장 편성이 맞는 방법으로 보인다. 다 없애는 것 보다 말이다. 그 이전 이런 문화가 생기기 전에는 방송 시간이 짧아지거나, 길어지는 편성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 아니면 '도'다.
웃지 못 할 일이 생겼으면 모두 웃지 말라~! 이런 말이 과연 옳은 일인가 싶다. 애통함은 누구나 똑같다. 자신만 더 애통하다고 여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이라는 나라의 전통과 인습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남의 슬픔에 같이 슬퍼할 줄 알자~ 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내가 슬퍼 있다고 남까지 슬퍼라~! 라고 하는 말은 없었던 것이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어느 기점을 두고 생겨난 추도 문화의 예외성의 조각 한 편으로 인해, 이 사회에 있던 문화가 이상하게 변질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아니라고 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 쪽에서는 분명히 '나 슬픈데 남 웃지 말라~' 라는 말로 강요를 하는 사회가 도래한 것은 부인 못 할 것이다.
시청자들에게는 거창한 한 마디로 들릴 수 있지만 행복추구권이라는 것이 있다. 시청자가 아니라 국민이다. 그 나라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마음이 어찌 하나의 감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같이 슬퍼할 때 슬퍼할 줄은 알지만 24시간 같은 마음으로 살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것을 강요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목적성과 예외성도 구분이 되었으면..!
현재 MBC는 '천안함 사고' 이외에 예능 결방의 문제는 파업과도 연관이 있다. 굳이 천안함 사고가 아니더라도 주요 예능 결방은 거의 당연시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능 결방에 대해서 명확한 목적성을 띈 형태로 진행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방송사 보다는 좀 더 자유스럽게 예능 결방에 임할 수가 있다.
MBC와 나머지 두 방송사인 KBS, SBS는 다른 입장이다. 목적성이 명확치 않은 입장에서 굳이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눈치를 보면서 예능 결방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예능 방송이 되는 것은 당연시 되어야 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해야 하는 것이 모든 분류의 특성을 가진 방송이 취해야 할 도리다.
시청자의 볼 권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
볼 권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유 국가다. 웃음도 울음도 스스로 정하는 것이며, 애통한 사고나 사건이 생겨도 슬퍼할 시간은 개인의 자유다. 한 사람이 슬퍼하는 시간이 몇 분이 될 수 있고, 몇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몇 주, 몇 달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슬퍼한다고 남까지 계속 슬퍼라~ 라고 하는 것은 정말 이해하지 못 할 말인 것이다. 진정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냐? 진정 슬퍼하는 사람들은 남이 자신들의 슬픔만큼 받지 않는 것이 그들의 생각일 것이다. 내 자식이 죽고, 내 남편이 죽었다고 그것을 끝까지 살려내라 하지 못한다. '천안함 사고' 유가족의 슬픔은 하늘도 슬퍼하고 모든 사람이 슬퍼하고 그 가족 모두가 슬퍼하지만, 그 유가족들은 새로운 사고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과 새로운 슬픔을 가질 사람을 생각해 사고 조사를 멈춰줄 것을 오히려 원한다.
내 가족의 슬픈 가족사가 있다고 해서 지나가는 사람들, 내 이웃, 내 학교의 벗들이 웃는다고 웃지 말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하지 못하다.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볼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렇다고 한쪽의 감정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위험성이다. 실질적으로 이런 변질되어 가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다소 본 필자의 주장이 강하게 나간 것은 글재주가 없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하나로 귀결될 듯하다. "웃음과 슬픔 등을 선택할 권리는 모든 사람 각자에게 있는 것이지, 그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일 것이다.
예능 또한 마찬가지로 본다. 예능은 자신들이 정한 시간에 그대로 보내주고 보고 싶은 사람과, 안 보고 싶은 사람의 구분은 스스로 찾아가는 문화로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명 없던 문화가 생긴 것이다. 자신이 남에게 강요하다 보면 정작 자신이 행복해 지고 싶을 때 불행해 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난 웃고 싶은데 남이 웃지 말란다~ 그래서 나 슬퍼해야 한다~! 식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해 봤야 할 일이다. 결국은 자신들이 만든 눈치 보기식 편성이 스스로의 살을 깎아 버린 결과가 된 것이다.
* 쓰다 보니 너무 글이 길어졌습니다. 글재주가 부족해서 이렇게 길어졌네요~ 제가 문화 현상에 대해서 레포트를 쓴 것이라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발행글 이었어야 하는데 하루 늦게 발행이 되네요 ^^] *
* 여러분의 추천 한 표는 저에게 큰 힘을 줍니다. 추천쟁이는 센스쟁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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