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대작 사건은 법원에서 무죄가 됐지만, 일반적인 상식에서 무죄로 바라봐 줄 이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예술이라는 것을 이해할 줄 알고 사랑한다면 그가 저지른 죄는 유죄라고 단언할 이가 넘치고 넘친다.
그것도 상습적인 대작으로 저명도를 키우고. 자신의 실력이 아닌 배 곪는 작가의 능력을 갈취해 생활해왔기에 아티스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또한, 반성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태도를 가진 이이기에 베풀 아량이라는 것은 없어야 정상이다.
조영남은 대작 논란 당시 ‘조수를 사용하는 건 미술계의 관행이며, 자신의 작품은 아이디어나 개념을 중시하는 팝아트인데 화투 그림은 조영남 고유의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장르 특성상 자신의 작품이 맞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정과 방법. 도덕적인 잣대로 옳은 행위인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일절 없이 자신의 무죄만 주장해 지켜보는 이들은 학을 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잘못을 부인하는 뻔뻔함이었으니 분노는 하늘을 찔렀던 것이다.
게다가 정당한 페이를 지불하지 않고. 염가로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논란은 중한 사안이다. 하지만 그는 무죄가 나자 방송 활동을 넓혀 가고 있다. ‘이게 왜 문제인가?’라는 의문을 가진 이도 있겠지만, 문제인 건 자신의 온전한 작품이 아닌 타인(조수)의 작품을 염가에 들여 자신의 순수작품인 양 고가에 판매를 한 것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사기에 해당하며, 작가의 능력치를 하향 조정을 할 사항이기에 문제라 지적하는 부분이다.
예술성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을 대작으로 메꾸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리터칭해 판매를 한 것은 사기 행위와 같기에 그가 활동을 하는 것은 마뜩지 않다.
어쨌든 법원에서 무죄가 나왔기에 활동을 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조영남의 기개는 참으로 당당해 보이나. 그 기개가 이 사회나 다른 사회에서도 통하지 않는 것이기에 법원의 무죄와는 별개로 질타를 멈추기는 어렵다.
조영남의 기백이야 또 그렇다 칠 수 있다. 개인의 부도덕함이니 올바르든 말든 안 보고 넘어갈 수 있으나. 안 보고 넘어갈 수 없게 한 건 공중파 예능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출연시키는 예능 제작진이 있다는 점에서 온전히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
그가 예능에 거리낌 없이 출연할 수 있는 건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봐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똑같거나 덜한 잘못을 해도 지나치게 출연이 제한된 유명 스타 예능인이 있는가 하면. 조영남은 조심스러운 면도 찾기 어렵다. 그냥 출연하고 싶으면 하는 모습일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방송에 나온다.
그것도 까탈스럽기 짝이 없는 MBC 예능에 마치 프랜차이즈 스타인 냥 무리 없이 나오는 모습은 황당함을 넘는 장면들이다. 그의 출연은 <비디오스타>에 이어 <라디오스타>까지 막힘이 없었다.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신정환은 도박 전력으로 수년째 MBC 예능에 출연을 못하고 있다. 사건 당시 프로그램에 피해를 입혔다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해도 이제는 출연정지 해제를 할 수 있는 시기임에도 그는 출연을 하지 못한다. 얼마 전까지는 이름도 제대로 안 부른 까탈스러운 방송사 아니었던가? 얼마나 도덕적이면 저럴까? 싶을 정도로 까탈스러운 방송사가 조영남에겐 유별난 관용을 베풀고 있다.
단독 사건으로 볼 때 도박은 개인 자산 손해 수준의 일탈이자 병이다. 하지만 조영남은 대인 사기 사안임에도 더한 사람을 출연시키고 덜한 사람을 출연 정지하는 모습은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자신은 결백하고 당당하다고 해도. 이 사회를 이루는 대중은 그의 행위를 정당하다 생각지 않는다. 혼자 당당하게 죄가 없는 척. 마치 당한 것처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는 조영남에 황당함은 클 수밖에 없다.
대중은 그에게 죄가 없다 생각지 않는다. 그런데 방송사가 먼저 조영남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기득권 간 챙기기를 왜 대중이 이해해야 하는지. 그보다 훨씬 덜한 일탈도 못 받아주는 방송사가 중대한 하자의 유명인을 챙기다니. 황당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