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대 개인 감정 싸움은 당사자 간 풀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타인이 끼어들어 해결할 길은 없으며. 타인이 끼어든다고 해도 위로 정도 밖에 얻는 건 없다. 풀 수 있다 판단이 되면 만남을 갖고 서로 충분히 풀었다고 할 때까지 의견을 나눠 골이 깊은 감정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그러나 ‘볼빨간사춘기’는 현재 만남을 갖기 어려운 감정 싸움을 하고 있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고. 각자의 주장에 선 대중은 그 주장에 동의를 하며 힘을 실어 주려 하지만, 고작 줄 수 있는 건 같은 악감정 표현일 수밖에 없어 이 또한 감정싸움의 연장선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두 사람의 주장은 일견 이해되는 면은 있다. 우지윤이 갖는 서운함도 이해되고. 직접 풀었다고 생각했던 안지영의 입장도 이해되는 면은 있다.
하지만 역시 따지고 보면 그 서운함을 이해해야 감정의 골을 좁힐 수 있기에 무엇이 어긋난 것인지를 따져볼 수밖에 없다.
우지윤이 섭섭할 수밖에 없는 건 안지영이 일방적인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안지영의 입장에서도 우지윤이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의 결정을 했다는 생각에 이왕 헤어질 거 지금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오랜 동료의 입장에선 그건 무례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헤어지는 입장이라고 해도 준비할 시간은 있어야 하는 게 기본인데. 이왕 결정한 것 지금 당장 헤어지자고 하면 반길 일은 아니기에 섭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설령 감정싸움이 있었다고 해도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면 그건 비즈니스 관계 유지 차원에서라도 일정 기간의 이별 계도 기간은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계약상 남아 있는 앨범을 내든 안 내든 그건 동료로서 가져야 할 매너다.
우지윤의 입장에서 상대가 감정적으로 대한 것에 대해 섭섭함을 갖고 그걸 헤어진 이후 앨범에 가삿말로 녹여냈다고 해도 그건 정상적인 일이다. 굳이 녹여 낼 필요가 있느냐 하겠지만. 그건 그 개인의 선택권이니 지적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지윤은 그 가삿말이 이별 시기에 쓴 것이 아닌 그 이전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었다고 했다. 설령 그 감정이 반복돼 겹친 것이라고 해도 그가 그 시기의 감정이 아니었다고 하면 서운한 감정과는 먼 곡이기에 그걸 물고 늘어질 필요도 없다.
또 우지윤이 섭섭할 만한 건 일방적 통보를 하듯 이별을 했는데. 남아 있는 서운함을 재단하듯 없다고 표현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다.
자신은 섭섭함이 남아 있는데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안지영이 방송에서 나와 우린 좋게 헤어졌다고 하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기에 우지윤이 섭섭한 감정은 이해되고 남는다.
안지영이 너무나 속상하다 표현하는 것 중 일부 이해되는 건, 좋게 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결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그래서 속상한 건 이해된다.
또 직접 만나 풀 수 있는 걸 굳이 대외적으로 알려 감정의 골이 커진 것에 대한 속상함은 이해된다.
그러나 풀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 어쨌든 둘의 섭섭하거나 속상한 감정을 풀기 위해 만남을 가져야 한다. 이 상황에서 서로 괜찮다고 한들 괜찮은 게 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한 사람이 방송에 나와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또 다른 한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할 최선을 했다면 그건 잘못된 게 맞다. 최종적으로 그런 판단이 되면 만남을 갖는 건 필요한 일이다.
그 만남을 통해 서운한 감정에 미안함을 표하고.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열어놓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미안함을 표할 때는 미안한 마음의 크기를 저울질하지 말고 시원하게 풀어야 한다.
누구나 다툴 수 있다. 형제자매도 미친 듯 다투지만 늘 어떤 계기로 감정을 풀게 돼 있기에 그 계기를 마련하는 게 좋다. 언론과 대중은 그런 계기를 마련하는 산파 역할 이상도 이하도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