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예능 하나 못 보는 것에 뭐 그리 분노를 표하는가?라고 한다면 그건 이기적인 발상이다. 다수의 자유를 침해하는 말이기도 하니.
프로그램 편성이라는 건 최소한의 약속이며, 방송사가 쉽게 바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설령 급한 속보가 있어 방송 시간이 이동하거나 축소된다고 해도. 시청자에게는 최소한의 사과와 동의를 구해야 한다.
속보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속보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지만.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이 기준이 무너졌다.
정부가 하는 모든 정치적 사안을 라이브 방송으로 틀어줘야 한다는 듯, 지상파는 물론이요. 종편까지 온갖 방송이 경쟁적으로 실시간 중계를 하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암묵적 룰이 된 주말 프로 스포츠 중계는 2시쯤 시작해 5시나 6시 사이에 끝나기에 마지막 부분을 보기 힘든 부분이 있었고, 시간이 길어질 경우 시청자의 동의를 얻어 종료를 하거나 다음 프로그램 시작 시간을 연장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이건 하나의 룰이 되어 방송사가 조정했던 부분. 그럼에도 시청자의 불만이 있어 애를 태워야 했던 게 방송사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고민도 없다. 정부를 위한 이슈가 있으면 그게 속보성이든 특보성이든 구분을 하지 않고 특보로 전환해 모든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판문점 북미회담은 급히 성사된 것이고 속보로 전할 수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재방송 시간 편성한 특보야 그럴 수 있었지만. 정규 프로그램 방송 시간이 됐음에도 지상파 3사는 물론이오. 종편까지 시청자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해당 시간 대부분의 예능을 방송하지 않았다.
특별방송의 가치가 있는. 그 성격이라면 특별방송에 시청자가 불만을 표하지 않았을 테지만. 북미 판문점 정상회담은 특보성의 가치가 없었기에 불만이 쇄도했다.
갑자기 성사된 것이고. 한국 주도의 성격도 아니었으며. 결과상 한국이 얻는 것도 없었다. 결정된 건 하나. 하노이 회담 이후 대화의 모멘텀을 마련했다는 점이고. 그 정상회담의 당사자는 한국을 제외한 북미 양자다.
그럼에도 자국의 정상회담 급으로 정규 편성된 프로그램을 결방하고 특보를 전했다.
이미 깜짝 정상회담에서 나올 결과가 크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기껏 예상할 수 있는 것이 5분 남짓한 인사일 거라 했지만, 1시간 여를 회담한 건 놀라울 일이지만. 역시 나온 거라곤 북미회담을 이어 갈 거라는 것 외엔 없다. 한국은 사진 한 장 찍는 영광(?)만 누렸다. 그리고 정전선언 이후 66년만의 판문점 회담이란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지만, 의제나 성과 모두 한국에 도움될 것은 없었던 회담이다.
이 시간 방송된 <런닝맨>과 <복면가왕> 등은 모두 결방됐고, 특보로 대체됐다.
지적할 수밖에 없는 건 특보의 가치가 부족한 회담을 수시간 특보로 내보냈다는 점. 그리고 2년 넘게 이런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는 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언론의 자유를 언론이 스스로 포기하고. 과도한 충성 보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것이 속보라면 속보로 전하면 될 일을 특보로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고. 이젠 그 선택권조차 의무인 듯 과잉 충성으로 보도 시간을 내주는 점에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면이다.
시청자는 볼 권리가 있고.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렇기에 방송사가 정규 프로그램이란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인데. 그 룰을 파괴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전달할 가치가 있는 속보라면 정규 방송 틈틈이 속보 멘트를 띄울 수 있는 일이고. 그것까지 시청자가 불만을 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잉 충성으로 특보성의 성격도 아닌 특보를 특별 편성하는 문제점. 분명히 고쳐야 한다. 7, 80년대 언론 통제 시대나 있었던 의무 충성 보도. 이 시대에 볼 성격의 특보가 아니다. 언론이 정부의 개인 채널도 아니고. 한 숨 한 숨 숨소리까지 전달할 이유가 없다.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의 조사대상 37개국 중 언론 신뢰도 2년 연속 최하위인 이유는 바로 이런 과잉 충성 보도에서 오는 것이다.
<사진=YTN, 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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