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출연반대 넘어 마녀사냥. 누리꾼의 왕따 본색

728x90

일요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고 있는 김진표를 향한 누리꾼들의 공격 본능이 마녀사냥 수준으로 넘어가고 있다. 건강한 비판이라기보다는 트집 잡이라고 여겨질 만한 누리꾼의 공격은 김진표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인 윤주련까지 표적 범위를 넓혀 염려할 만한 수준의 폭력을 가하고 있다.

<아빠 어디가>는 시즌1의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이 시즌2가 나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유독 심하게 나타냈다. 그만큼 정도 들었을 테니 이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나, 그 사랑이 심해 다른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은 애석하기 그지없다.

또 시청자가 아닌 일반 대중이라도 새로운 인물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며, 시선은 자연스레 출연자의 자격 검증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김진표가 일베어를 사용했느니, 쓰지 말아야 할 제스처를 썼다느니 라는 방향으로 시선이 몰린 것.

이런 일이 벌어지자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인정한 김진표는 <아빠 어디가>를 통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신도 달라지는 부분을 찾겠노라! 라는 말을 하며 실제 방송에서도 매우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아이의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본 김진표는 윤민수의 아들 후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는 듯 얕으면 얕고, 깊으면 깊은 깨우침을 얻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아빠 어디가>는 아이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아이에 소홀했던, 또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빠들의 또 다른 성장기에 포커스가 맞춰져야 할 프로그램이다.

아빠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명확하게 보일 수는 없다고 해도 분명 변한 것도 맞고, 아이들도 친구들과 함께하며 건전한 변화를 한 것도 맞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은 전체 특성상 건전한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철부지 아이의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철부지 어른도 변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빠 어디가>라면, 비록 작은 문제를 일으킨 아빠라도 정신적 성장과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프로그램이 바로 <아빠 어디가>의 역할이다.

김진표가 철부지 어른으로 부주의하게 일베어를 쓰고 잘못된 제스처를 의미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해 문제를 일으켰다면 이 또한 출연하면서 겪은 고충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면 대중이 할 몫은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저 주위에서 신세대 용어라고 쓴 말을 뜻도 모른 채 가져다 쓴 김진표의 실수는 사실 우리 주변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공인으로 받아들여지는 연예인이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을 대중은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두어 그 사람을 처벌하려 들고 있다.


지적을 통한 교화가 목적이기도 한 비평은 현재 제대로 된 비평이 되지 않은 상태로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떤 일을 잘못하면 아예 이 사회에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상태로 매장하려는 대중의 심리는 폭력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티아라의 왕따 논란이 벌어진 이후 대중은 그 일을 상세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화영의 편을 들어 나머지 멤버를 ‘너도 똑같이 당해 봐’라고 하듯 왕따를 시키고, 그 상태는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녀들이 어떤 반성을 했는지, 그들 관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 체 그저 피해 입었을 거라 생각하는 쪽에 서서 상대를 비난하는 모습은 그것이 건전치 못하게 느끼게 하는 게 현실이다. 이젠 저주하는 모습만 보이는 것이 대부분의 대중 모습이기도 하다.

남을 판단하고 자신이 올바른 평가를 했다고 받아들여지려면 균형감이 있어야 하는데 일부 누리꾼을 비롯한 대중은 ‘오직 너만이 바뀌어야 한다’는 식의 사고관으로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은 ‘마녀사냥’ 식의 폭력으로 이어져 김진표도 그 단계로 이어졌다.


가까운 과거의 잘못된 것을 넘어 수년 전, 십수 년 전 있던 일까지 파헤쳐 검증하려 들고 있는 대중. 그 사람이 이후 어떻게 변했는가는 상관없이 그저 옛일을 파헤쳐 ‘봐 잘못한 일이 있잖아’ 식의 시선으로 ‘그 사람은 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가족끼리도 소통되지 않아 문제인 시대에 다른 이의 극히 일부분의 일을 두고 마치 그 사람 전체를 안다는 듯 판단해 거부권을 사용하고, 그 거부권을 단체 거부권으로 이어가 짓밟으려 하는 누리꾼의 움직임은 그 자신이 왕따 가해자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초 피해자가 생기는 것에 대한 방어권을 썼던 누리꾼과 대중은 이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왕따시키는 모습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의 폭력 상태로 번지고 있다. 일베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서 단순히 의미도 모른 체 일베어를 썼다 하여 테러를 하는 모습은 많은 피해자를 낳게 하는 것임을 그들은 생각지 않으려 한다. 정의를 위한 집단의 투쟁이 이제는 집단 파시즘이 돼 폭력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다.

<사진. MBC>


* 여러분의 손가락 모양 클릭 추천은 큰 힘이 됩니다. 추천쟁이는 센스쟁이랍니다~ ^^*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