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 안철수 이 시대의 지도자상
- [토크] 방송, 문화, 연예
- 2009. 6. 2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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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무릎팍 도사에는 '안철수'씨가 출연을 했다. 안철수 이름으로 본다면 그가 해 온 여러 일 때문에 이름 뒤에 어떤 칭을 해야 할 지 헤깔릴 정도다. 그냥 잠깐 하는 일이 아닌 모두 전문가의 깊이가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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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그는 현재 청소년들이나 일반 젊은 사람, 기업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가장 보고 싶어하고.. 존경받는 기업인이다. 현재는 카이스트에서 20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석좌교수로 있다.
안철수는 무릎팍 출연에서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레주를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남 위에 있지 않고, 항상 자신을 있게 해 준 사람들에게 환원하고 같이 함으로써 자신의 권익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닌 자신을 만들어준 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런 진정한 마음이 있어서인지 그의 직업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도전을 겁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만족감을 위함과 그 도전이 사회를 위해 어떤 작용을 할 지 생각해보고 그게 맞다고 생각이 들면 여지없이 그는 시도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 Noblesse oblige, IPA: /nɔblɛs ɔbliʒ/)란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말은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 검색 결과 : 다음 검색 (한국어 위키백과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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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박스 내용처럼 귀족의 의무를 다하는 도덕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안철수는 단연 멋진 행보를 보인다. 이 시대에 있어서 이런 도덕성을 갖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하는 사람을 찾아 보기는 아주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젊음과 열정을 다 받쳐서 이 사회를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들고 나온 고민이란 것이 자신의 평생 직업이 뭔지에 대한 고민일 정도다. 때 마다 달라지는 자신의 직업으로 인해 아직도 고민을 하는 모습은 남들이 보면 쉽게 이해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첫 번째 직업인 의사도 남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업이라 시작했고, 두 번째 직업인 컴퓨터 바이러스 예방 회사인 '안연구소 소장'직도 무엇인가 사회를 위해 쓸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용기로 시작했다. 세 번째 직업인 대학교수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도전 정신에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경영 노하우를 보태고 싶어서 그 좋은 위치의 직함을 뿌리쳤다.
1962년생으로 한국 나이로 48세인 그는 만 27세에 단국대 의대 학과장으로 부임을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안철수 연구소는 의사를 하던 중 취미로 컴퓨터를 하기 시작하면서 하게 되었다. 우연히 1988년 잡지를 통해서 알게 된 바이러스 보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플로피 디스크 50장을 검사해 보다가 자신의 디스크도 감염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서 방어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시작이 되었다. 이후 7년간 백신을 무료로 배포를 했고, 1995년 학과장을 그만두고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했다. 1999년 정보 보안 업체 최초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이는 당시 IT업계에서 '한글과 컴퓨터'를 이은 두 번째의 쾌거였다.
초등학교 시절 때 성적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책 읽는 데서는 남들이 절대 따라올 수 없다고 한다. 교과서는 안 좋아했지만 도서관에 있던 거의 모든 책을 독파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오죽 그 열정이 대단해서인지 책을 빌려주는 사서가 장난하는 줄 알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안철수가 고등학교때 오른 성적으로 서울대를 가게 되었고.. 자신의 이상과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한 학업 과정에서 남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안철수의 교육관을 묻는데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만하고 정작 자신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것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책 읽는 습관을 따라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주 맞는 말이다. 환경에 의해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모두 맞는 말이다. '맹모삼천지교'라고 맹자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의 교육을 위해 세번의 이사를 한 유래가 있다. 교육을 위해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토양을 키워 줄 환경 제공을 하라는 것이었다. 많은 지원이 아닌 그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레 배우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최초의 바이러스는 파키스탄의 어떤 형제의 작은 복수심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가게가 불법 복제로 인해서 망하고 난 이후 불법 복제를 하는 가게를 역으로 내서 자신이 해주는 불법 복제물에 바이러스를 끼워서 줬고 그것이 손에 손을 타고 한국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들어오는 데에만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들의 바이러스는 시초이긴 했지만 큰 악의가 없는 정도였다. 지금처럼 악의적인 해를 끼치는 정도가 아닌 애교 수준의 결과물 이었다.
당시 연구를 더 잘하기 위해서 시작한 컴퓨터와 막 끝마친 기계어 공부와.. 때 마쳐 보게 된 잡지에서 바이러스를 알게 되었고 그 계기로 자신의 디스크를 검사해 본 결과로 시작한 바이러스 보호 프로그램 제작은.. 1988년 6월 10일 밤에 만들어진 것이 지금도 쓰고 있는 v3의 최초 버전이었다. 이 때 탄생한 것이 v3의 전신인 v1(Vaccine 1) 이었다. 이것이 국내 최초의 백신이자 세계 최초의 백신이었다.
무려 7년 동안 낮엔 의사였고, 밤엔 백신 제작자로 살았다고 한다. 안철수 그는 국가에 헌신한다는 마음 보다는 개인적인 만족감을 위해서 v3를 만들었다고 한다. 나도 (사회에서)받은 만큼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료로 백신을 공급했고.. 거기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이런 생활을 하던 중 고민을 했고 점점 늘어나는 바이러스에 부족한 시간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6개월을 고민한 끝에 의사 생활을 정리하고 남들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안연구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바이러스 만드는 사람은 거의 못 잡는다고 한다. 이 바이러스를 장난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취직을 위해서 만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사실 예전에 그런 사건이 있기도 했다. 그와 좀 다른 사건도 있었다. 해킹을 고의적으로 해서 자신이 밝혀지게 한 이후 작은 벌을 받고나서 좋은 곳으로 취직한 인간도 한국에 있기도 했다. 안철수는 이렇게 고의적으로 남을 해할 목적으로 만들어서 취직을 위해 쓰는 사람들은 취직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장난으로 시작되었던 바이러스 제작이 이제는 취직을 위해서와.. 남의 개인정보를 빼내는 역할의 도구로 제작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덕적 타락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안철수다. 그는 경찰, 군인, 보안 회사 등은 특히나 자신의 일을 정확히 인식을 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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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전 세계 적으로 금융위기가 오고 전체적으로 위가가 왔을때 그 중심을 따라가보면 엘리트 출신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이렇게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생긴 의문이 바로 똑똑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그것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며 자신이 MBA 교육시절 법대 교수님이 하는 말을 들려줬다. 예전 정말 머리 좋은 학생들이 있었는데 자신이 A+를 안 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10년 뒤에 보니 그 학생들 대부분이 감옥에 가 있더라고 한다. 그런 걸 보면 머리가 좋아도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치는 존재의 중심에 엘리트층이 있다는 것이다.
또 남긴 말이.. "운이라는 것은 기회가 준비와 만난 순간이다"라는 영문 속담을 풀이해서 얘기를 한 것이 있다. 아무리 기회가 주어져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도 그런 기회를 얻은 것은 사회가 준 기회였다고 공손하게 말을 했다. 100% 사회적 성공을 혼자서 이룬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을 하는 그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사회가 준 기회로 얻은 성공을 나누고 싶어 한다.
안연구수를 만드는 시점에서도 이런 역할을 함에 도움을 받고자 정부 부처 여러 곳에 문의를 했으나 항상 모든 곳에서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비영리 공익 법인을 만들고 싶은 꿈도 없어질 즈음 어떤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제안을 해왔고, 그러면 일반인들에게는 무료로 보급하고 공공기관과 기업에게만 유료로 하자는 제안을 하고 받아들여져서 이룬 것이 바로 안연구소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에서 벤처 회사가 정부에게 지원을 받을 토양은 당시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 밸리가 지금은 '성공의 요람'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안철수는 '실패의 요람'이라고 말을 해준다. 그곳은 수업이 많은 실패들이 있다고 한다. 100개의 벤처가 있으면 99개가 실패하는 곳이며.. 만약 이 99곳의 벤처가 실패를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문제 될 것 없거나 노력을 한 곳이라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지원을 해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99번의 실패를 하더라도 단 한 번의 성공을 하면 갚을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한국의 벤처가 살아남으려면 이런 실리콘 밸리의 도전 정신과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예전에 안철수가 한 말 중에도 95%의 벤처가 죽을 것이다.. 란 말 때문에 많은 욕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토양의 기업 문화나 정부 지원을 보자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약 2000년 전후로 시작해 한국은 iT업계가 뜨거운 감자였다. 이 때 많은 벤처 붐이 있었다. 이때는 정부 지원 보다는 기업 지원들이 더 많았다. 당시 그로 인해 안 좋은 사람들도 이곳에 많이 진출도 했었다. 그 중 블랙엔젤과 화이트엔젤이 있었다. 필자가 함께 했던 iT회사도 이때 지원을 받아서 컸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엔젤 투자가와 블랙엔젤 투자가를 구별하지 못함으로 회사가 넘어간 적이 있다. 이때 기억에 남는 것도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이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금 사정으로 인해 기술은 있으나 돈을 바라다보니 블랙엔젤도 구별 못하는 아둔함을 보인 것도 있었다. 그래서 투자를 받았고 어느 순간에 투자금을 회수해 버리는 수법으로 회사 자체가 넘어간 것이다.
안철수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시작당시 매월 지급되는 월급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매달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다음 월급을 어떻게 줘야 하느냐의 고민은 대단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당시 외국 기업에서 한국 시장을 노리며 안연구소 v3를 사려고 접근을 해왔다고 한다. 백신 업계 최고 기업에서 안 연구소를 인수해서 문을 닫게 하고 자신의 제품을 팔려고 하는 계획에서였다고 한다. 아마도 기억에 시맨텍이나 노턴, 맥아피 이었다고 기억이 된다. 이곳에서 1,000만불이면 팔겠냐고 했고.. 이를 눈치 챈 안철수는 바로 No~를 완강히 외쳤다고 한다. 자신은 배부를 수 있으나 자신과 함께했던 모든 식구들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고 한국 백신을 죽이는 결과를 가만히 두고 보지는 못한 것이다. 어디 이게 쉬운 일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영리를 위해 다른 사람은 외면하기 일쑤다. 하지만 안철수는 이런 유혹을 버릴 줄 아는 사람였다.
2005년 회사를 떠나는 계기도..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는 잘 되는데 다른 벤처 회사들은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민하며 내 능력을 산업 전반에 쓸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년을 고민하다 사임하고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넘겼다고 한다. 떠나면서 같이 했던 동료들에게 주식도 무상 분배를 하는 용기를 보여줬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자신도 같은 월급을 받고 회사를 키워가면 받은 보상을 직원들에게 다시 환원을 할 수 있는지 너무 존경스러워지기 까지 한다.
그는 모든 직원에게 존대말을 썼고.. 회사 동료는 수평적인 관계라고 한다. 역할 부담만 다를 뿐 내가 할 일은 회사에 영혼을 불어넣고, 모인 사람들이 공통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모임체를 만들고 싶어했다고 한다. 자신이 죽은 후라도 공통의 영혼이 있는 회사..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안철수를 청교도적 삶(금욕주의)을 사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은 참고 살아 본 경험이 없다고 한다. 돈 보다는 명예를 중요시하고, 또 명예 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편한 것이 중요해서 항상 하고 싶은 것은 참지 않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안철수는 자신이 마음이 편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안철수는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자기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기회를 주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을 했다.
위에서 수 없이 언급 되어 온 안철수의 건강한 생각들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신이라고 본다. 이런 나눔과 환원을 통한 삶들이 이 시대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항목이기도 하다. 현재 정치를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뱃속 따뜻함을 원하고 있고..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는 아둔한 정치가들에게 있어서는 각별히 요구되는 삶일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정치꾼들의 싸움질과 당리당략으로 일관한 서로의 배제들로 인해 이 시대 정치는 고여서 썩어버린 물이 되었고.. 민생은 이를 개탄스럽게 보기만 할 뿐.. 어느 누구도 노력하는 것엔 인색하다.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눈을 뜨고, 서로를 맞이하며 정치를 하고 사람을 아우르는 정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인 모두는 이런 것들을 못하고 있다. 그것은 대통령 한 사람 뿐만이 아니다. 각 당과 모든 정치인들이 똑같다. 매일 국회가 아닌 길거리에서 투쟁만 하는 당이나.. 여론을 무시하는 당이나.. 뒷짐지고 보는 당들 모두가 잘못된 행태이다.
안철수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다. 다만 안철수가 가지고 있는 이런 사상들을 모든 정치인들이 배웠으면 한다. 나누는 삶, 환원하는 삶과 더불어 느낄 수 있는 좋은 점들은 좀 적극적으로 배워보길 바란다. 안철수 같은 심성의 정치을 원한다. 이런 사람의 심성이 바로 이 시대가 원하는 정치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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