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킥3, 승윤의 자선병은 사회병?
- [토크] 방송, 문화, 연예
- 2012. 1. 1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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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윤이 병처럼 가지고 있는 ‘자선병’은 과연 자신이 늘 베풀 수 있는 기본 소양이었을까? 뭐 이런 소양이 기본적으로 배어 있는 사람도 물론 있는 것이 이 사회의 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승윤의 자선병을 떠나 생각해도 이 사회는 분명 자선이라는 개념이기 보다는 강요를 하거나, 그것이 미덕인 것처럼 만들어 낸 문화에서 온 어쩔 수 없는 자선병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지도 모른다.
근래들어 학교에서 벌어지는 ‘빵셔틀’이나 ‘와이파이셔틀’은 명백한 갈취지만, 갈취를 하는 이는 나눠 쓰자는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함몰되어 올바른 도덕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것이 범죄인지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하는 사회가 된 것은 어이없는 현실이란 것을 보여준다.
태어나서부터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안심이 되는 승윤의 기본 소양이야, 나무랄 때 없는 베품의 미학을 가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지만, 이 사회는 진실된 의미에서 나누어 쓰는 것을 원하기 보다는 베풀기를 강요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문제 의식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소양을 가진 이들이 있는 가하면, 이 사회의 일부이지만 상당수의 국민들 의식은 그와는 다른 패턴을 보인다. 내 놓으면 좋고, 안 내 놓아도 상관 없다는 식의 사고가 아닌, 가진 자는 무조건 내 놓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게 이 사회의 단편적인 의식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정도의 무리 없는 베품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그것이 뭔 의무라도 된 듯 스트레스를 가져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개인의 소양에서 나올 수 있는 베품이, 대중들의 바라보는 의식 때문에 과분하게 베풀어 지는 경우가 있는 것도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다.
베푼다는 것. 베풀기 위한 법이라고 해도 사실은 그런 법과 의식 속에서 받는 자도 스트레스가 되는 것은 또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책적인 지원이 서류법으로 만들어지면서 생기는 부작용은 이곳 저곳에서 보인다.
불과 하루 전 평소 아는 이의 글 속에 다문화 가정 지원에 대한 불편함을 이야기 한 이의 마음을 보면 정책적인 지원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 가는지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잘 살거나 못 살거나 지원이 되는 것은 법적으로 지원이 되기에 개인보다는 단체로 지원이 되어 실제적으로 지원이라 느낄 수 없는 문제.
그리고 실질적으로 지원이 되어 가계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지원금을 받기 위한 단체를 기웃거려야 하는 상황은 그들에게 적잖은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법했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지원으로 받지 않아도 될 사람에게 지원이 되는 문제. 또 상황에 따라 조금 더 지원을 받아야 하는 개인에 대한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있으나 마나 한 정책으로 다가왔다는 내용이기도 했다.
차라리 그런 지원 정책에 대해서 거부를 하겠다는 내용의 글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장 <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도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서민들(내상의 가정)이 파산하여 정작 필요한 지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정책은 사실 있으나 마나 한 정책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승윤’이 자신의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정말 안 쓰는..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꼭 필요로 하는 이에게 가져다 주는 모습은 적절한 지원으로 보일 정도였다.
단지 밍크 쇼울이나 보약으로 표현이 되었지만, 이것을 복지정책상 지원금의 제대로 된 사용 면에서 볼 때는 승윤이 투입한 가정에 대한 지원이 훨씬 더 정확한 사용법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정책은 정작 필요한 곳에 지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실정이다. 집이 없는 사람에게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자보다 훨씬 쉬울 정도로 기준이 정확하고 낮아져야 하는 데, 정작 집이 필요한 서민은 수십 년간을 고생을 해야 입주를 할 수 있는 그런 복잡함은 오히려 서민에게 희망을 끊는 계기로 작용한다.
승윤의 자선병은 한 개인의 병적인 증세라 한다 해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정작 받지 못하는 현상은 씁쓸함으로 다가 온다. 시트콤 하이킥3에서는 한 가정에서 있는 작은 일로 표현이 되었지만, 이를 사회로 연관해 생각하면 지나친 정책 지원으로 잘 사는 이는 필요치도 않는 지원을 받아 더욱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받아야 할 것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더욱 더 못사는 집단이 되어야 하는 상황을 생각케 하여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 사회는 자선을 너무 강요하는 의식을 가진 사회라 할 수 있다. 미덕이 될 수 있는 개인의 베품이 마치 의무인 것처럼 당연히 요구하는 사회는 뭔가 잘못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누가 잘 사는데, 넌 잘 사니까 사회에 기부를 무조건 해야 한다’는 사고는 피해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것이 요즘 아이들 사고를 지배해 ‘빵셔틀’이나 ‘와이파이셔틀’이니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요구의 사회병이 되는 것은 아닌지 확대해서 해석을 해 보게 된다.
‘하이킥3’에서 보여준 ‘승윤의 자선병’은 개인의 모습이지만, 그것을 바라지 않는 것 같아도 은근히 바라는 유선의 모습들에서 죄책감은 보이지만, 이 사회가 보이는 현상과 같은 것은 아닌지 생각케 했다. 만약 내상과 유선의 가정이 조금의 여유가 있는 가정이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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