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비판이 아닌 풍자 그리고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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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명수는 12살 특집'이 엄청난 웃음을 주며 방송을 마쳤다. 그러나 방송이 끝나고 난 이후에 탐탁지 않은 매체들의 소식 알리기에는 무한도전이 종편을 비판이라도 했다는 듯 뉴스가 나 기분을 언짢게 했다. '무한도전 종편 비아냥'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카피를 뽑아낸 제목은 그 자체로 무한도전을 몰이해 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싸움 붙이기와도 같은 그들의 왜곡된 보도는 많은 대중들을 헛갈리게 만들고, 마치 그 생각이 옳은 것인 냥 만들어 결국에는 대중들까지 '아! 그렇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하여 '무도'가 종편을 비판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현상은 언론 자체가 <무한도전>이 생각해 내는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단순히 어떤 자막이나 씬들이 등장하여 사회적인 문제들을 건드리면 '옳거니'라고 무릎을 치며 이거 뉴스거리가 되겠구나 하며 그것을 거르지 않고 내보낸다. 다른 뜻은 접어두고 단지 그 하나의 문제로 대단한 것을 알아낸 것처럼 부풀려 뉴스를 내 보내는 것은 그래서 무척이나 안타깝고 위험하다.

<무한도전 : 명수는 12살 특집>에서는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미모'라는 자막이 등장하며 많은 웃음을 이끌어 냈다. 이 자막은 종편채널인 'TV조선'에서 나온 자막을 풍자한 자막이기도 하다. 'TV조선'은 자사의 모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근혜 의원을 향해 애끓는 정을 표현하려 이런 표현을 쓰며 신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 라는 말을 쓴 것이 발단이 되었다. 참으로 간지럽고도 어이없는 표현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보도 프로그램에서 이런 표현을 쓴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자막만 보면 뭔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착각을 주는 말들이 아니겠는가.

종편채널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특혜에 가까운 혜택을 받으며 채널을 배정받은 것은 많은 이들이 분통을 터뜨린 대목이기도 하다.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그 위험성은 엄청난데, 종편 채널들의 문제는 그 위험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데 문제점이 크다. 언론이 취해야 할 자세는 바로 중립성인데도 불구하고, 정권에 아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대중들에게 비아냥을 받는 지점이 되는 대목이 된다.

이런 헛웃음 나오는 아부성 멘트를 하는 'TV조선'의 자막과 말들을 가만히 두고 볼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표현법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그 표현은 바로 풍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뉴스는 이 사실이 있었다! 정도를 고스란히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성격이 있는 것이 뉴스고, 예능 프로그램은 이를 다시 한 번 꼬아서 웃음으로 승화시키면서 풍자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훨씬 더 유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 번 그저 웃자는 것이다. 웃으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쓴 웃음을 짓고 고쳐지길 바라는 것을 다시 바라는 것이 대중들이 되면 된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미모'란 풍자섞인 말은 <무한도전>에만 나온 것이 아니다. 같은 날 방송된 MBC의 또 다른 예능인 <세바퀴>에서도 거의 똑같은 말이 회자가 되며 풍자의 소재로 쓰였다. 배우 송채환이 대학 시절 청순한 미모로 학교에 등장할 때 빛을 뿜을 정도로 예쁜 모습으로 등장했다는 이휘재의 말에.. 자막에는 역시나 '형광등 10개를 켜놓은 아우라'라는 자막이 등장을 하여 웃음을 준다.

이런 풍자는 꼭 종편을 두고 직접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쓰는 말인 '비아냥'도 아니다. 단지 풍자를 통해서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웃음으로 한 번 웃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바뀔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기에 풍자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론은 <무한도전>에서 이루어지는 풍자개그를 너무 찐하게 받아들여 정치권이나 어떤 단체들과 분쟁을 일으키게 만들 필요는 없다. 헌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매번 <무한도전>은 엄격한 심의를 받는 이유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풍자와 비판은 엄연히 다르다. 그들이 하는 것은 풍자이지 날선 비판이 아니다. 날선 비판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풍자개그 안에 섞인 작은 메시지 정도일 뿐이다.


<무한도전>은 예능프로그램으로서 한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기록을 하는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 되고 있는 역할자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 무한도전을 보면서 '아! 이 시대에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를 느끼는 정도면 이 프로그램은 너무나 훌륭한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그 역할을 너무나 잘하고 있다.

'명수는 12살 특집'은 한 개그맨에게는 유달리 없는 추억을 심어주는 특집으로 훌륭한 역할을 해 냈다. 자신이 살아온 성장 과정에서 다른 누구와 함께할 수 없는 이야기보따리들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기획으로는 더 없이 좋은 역할자로 서 주었다. <무한도전>은 박명수에게 없는 한 시대의 기억을 다른 멤버들과 제작진,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추억을 빌려와 없는 추억을 담아 주었다.

남극의 날씨처럼 휑한 명수의 기억에 불씨로 타오를 추억 하나를 던져준 것은 더 없이 훌륭했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또 하나의 기록을 이 특집에 기록해 놓았다. 바로 지금 이 시간에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창피한 일들을 말이다. '누군가에 쫓겨 산 타는 아빠', '쥐잡듯이 털리는 해결사',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미모'들은 모두 의미를 내재한 역사의 사건들이기도 하다. 이 말들은 훗날 또 다른 이가 열어본 추억의 역사가 될 곳이다.

글을 쓰다 보니 다소 무거운 글로 표현됐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번 <무한도전 : 명수는 12살 특집>이 무거운 내용과 웃음이 없는 특집은 절대 아니었다.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배꼽이 튀어나올지 몰라서 손으로 배꼽을 잡고 웃어야 하는 그런 재미진 특집이었다. 그중 길이 '만근추'를 외치고 훌러덩 넘어지는 재미는 특별한 웃음을 주었다.  <여기서 '만근추'란 무협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뜻은 근수를 포함한 의미이며 일천근, 일만근을 생각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무공의 한 단계. 무한도전에서는 만근의 추의 무게를 가지고 균형을 잡는다고 한 뜻(그런 길이 정준하의 러시에 나가 떨어진 것은 큰 웃음으로 남았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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