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 전설의 3대 기타리스트. 시린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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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2011년 까지 대한민국 록 역사의 전설적인 3대 기타리스트를 찾으라면 굳이 그들의 입을 빌지 않아도,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모두 한 목소리로 '시나위'의 신대철, 백두산의 '김도균', 부활의 '김태원'을 뽑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뭐 개인적인 호불호를 따져서 다른 이를 꼽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일반적인 다수 대중의 의식을 생각한다면 이들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놀러와>에 그 전설의 3대 기타리스트가 나온다는 것은 솔직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 역사상 처음으로 이 세 명의 전설을 한 데 모으는데 성공했다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더 없이 좋은 선물이 되었다. 오히려 그 모시기 힘든 3대 기타리스트를 모셔놓고도 1주 분량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일부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역사적인 일 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다른 팀의 기타리스트를 한 데 모을 수 있을까? 요즘 시대에는 뭐 그게 어렵냐 말하겠지만.. 1980년대 한국 역사에 획을 그은 이 3대 기타리스트는 실상 가장 팀의 중요한 사람들로 인식이 되었고, 그들은 절대적인 능력을 보여준 인물인데 그들을 한데 모은다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요즘 시대는 보컬리스트가 팀의 기둥이라 여겨질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엄연히 이 기타리스트에 의해서 팀이 운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타리스트만으로는 팀을 만들어 활동 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당연히 보컬리스트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고, 그렇게 보컬리스트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하지만 역할론에서 팀의 기둥은 명확히 이들이었다.

현재 살아가고 있는 2011년도 록밴드는 팀의 얼굴이 당연히 보컬이라고 받아들여진다. 당시에도 인기의 주인공은 항상 보컬리스트이기는 했지만, 보컬의 인기를 넘어서는 것 또한 기타리스트였을 정도이니.. 지금 시대에는 이 시대의 기타리스트 인기를 쉽사리 가늠해 보기조차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했던 시기가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보컬이 팀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생성과 소멸을 같이 하지만, 이들이 활동하던 시절은 보컬리스트는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자리로 여겨졌다. 즉 보컬리스트가 아무리 이름이 있고, 잘나가더라도 탈퇴를 하면 다시 영입을 하면 그만인 것이 보컬의 자리였다.

그렇다고 하여 팀을 대표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를 안 좋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띄어난 기타리스트의 존재는 팀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말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팀을 유지하는 기둥이었던 이 기타리스트들이 키운 밴드는 한국 록 역사의 기틀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자라온 불세출의 가수들은 또 하나의 역사로 기억이 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들이 키운 밴드의 위대함은 글로 표현하기에 지면이 작게 느껴질 정도로 대단하다. 지금도 엄청난 사랑을 받는 '김종서', '서태지', '임재범', '이승철', '故김재기'의 보컬 능력은 두말 할 나위 없는 진정한 가수의 모습 그 자체다.


한국의 록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이 3대 기타리스트 '김태원, 김도균, 신대철'이 <놀러와>에 출연을 한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고, 그들의 지난 이야기들은 아련한 아픈 추억을 공유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깎인 그들의 모진 인생사는 그들을 사랑하는 음악팬들에게는 같은 아픔을 느끼게 했다.

그들을 사랑했던 만큼이나 같은 세월 속의 풍파에 흔들리던 동년배의 아픔이라고 해야 할까? 왠지 그 아픔이 내 아픔인 듯 느껴지게 한 것은 이 프로그램이 전해준 감동이며 그들의 아픔 속에 시청자들의 아픔을 투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많이 아파하고 고뇌하는 그들의 인생사는 화려해 보이지만 무척이나 아픈 모습 그것이었다. 남들은 연예인으로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아팠던 기억은 시청자들의 아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저 음악만을 위해 살아왔던 그들에게는 그 음악조차 못한다는 것만큼 아픈 기억이 없었을 것이다. 밴드의 가장 중요한 것은 앙상블이다. 혼자 잘났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타 멤버와의 고른 조화가 밴드를 유지하는 길인데, 항상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유독 특유의 자존심이 발동되기 마련이라고 이들 밴드조차도 그런 면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밴드의 경우 서로가 헤어지는 이유라면 아주 개인적인 사생활이 이유가 되기도 하고, 팀 내 불화가 한 몫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신을 하는 이들까지 생기니 원만한 유지가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일 것이다.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적인 견해가 안 맞아 헤어지기도 했으며, 배고픔에 못이겨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보컬이 혼자 살고자 배신하고 나가 헤어지는 경우에도 처한 것이 이들이었다.

<놀러와>에 나와 그들의 과거 힘들었던 추억을 이야기 하는 데는 가슴이 아파 올 수밖에 없었다. 그간 김태원의 입으로 전해들은 말들은 많았지만, TV모니터에 심하게 과묵한 신대철이 나와서 어려운 시절을 이야기 한 것은 정말 희귀한 장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신대철이 기억하는 1980년대 후반의 기억은 무척이나 아픈 기억으로 전해진다. 당시 부활도 팀이 와해가 되고, 백두산도 와해가 되었던 시절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김태원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고 말을 한다. 물론 이때 기억은 김태원의 말로도 들었지만, 신대철이 기억하는 김태원의 모습은 훨씬 더 초췌한 인생 나락의 모습이었다고 전해진다. 백두산 또한 팀이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이 되어 김도균이 이태원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쏟은 기억을 이야기 할 때는 시청자로서도 눈물 나는 기억으로 다가왔다.

당시의 모습을 상세히 기억한다는 신대철은 왈칵 울음이라도 쏟을 기세였다. 그러나 다행히 마음을 잡고 이야기 했지만, 그 조차 굉장히 힘든 시절을 보낸 것이 당시였다. 신대철 또한 시나위가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시기가 되자.. 급기야 밴드를 운영하지 못하고 세션으로만 돌아다니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세션으로 돈은 남부럽지 않게 벌었지만, 자신이 어떤 음악 생활을 하고 있는지 느끼지 못하는 권태로운 생활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자괴감을 주었고, 그 조차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은둔하는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들의 아픈 과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계기였고, 그들의 진정 아름다운 기타 선율을 들을 수 있는 <놀러와>는 간만에 좋은 역할을 했다. 3대 기타리스트의 밴드 보컬리스트로 인연이 있는 김종서의 등장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음에는 분명하다.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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