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문화를 느끼다
- [토크] 뮤직, 공연
- 2011. 7. 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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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11년 8월 28일까지 열리는 '바로크·로코코 시대의 궁정문화' 특별전을 다녀오는 경험을 했다. 영국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 소장품이기도 한 이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꽤나 의미있는 일로 기억이 될 것 같다.
또한 아무나 사진으로 남길 수 없는 작품들을 이렇게 담아올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의미가 깊은 일로 남을 듯하다. 허락된 자유를 누린다는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일까? 아무튼, 특별한 기회를 제공받아 촬영한 작품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래도 현장에서 직접 보는 즐거움을 해치지 않기 위해 양을 조절해서 보여드리려 노력해 보고자 하련다.
대부분 17, 8세기의 작품들이었던 궁정 문화 속 이야기들은 호기심 가득한 나에게는 더 없이 좋은 경험의 이야기들이었다. 1600년에서 1800년에 이르는 문화들 속에 쓸려 들어간 듯 한 느낌은 뭔가 내가 그 문화 속에 있다는 듯 느낌을 받는 기회이기도 했다.
17, 8세기의 유럽 군주들의 애장품과 그 당시 문화의 깊이를 느끼게 된 이번 전시회로 인해 스스로 공부를 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영국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101건이 출품이 된 특별전을 보는 기회였다.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은 유럽의 뛰어난 장식용 예술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인데, 이중 다수가 왕과 왕비, 황제, 교회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바로 이러하다는 것은 이곳이 당시 유럽 문화의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의 전시물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와 일맥상통한 이야기 일 것이다.
바로 이 시기가 바로크 · 로코코 문화가 가장 부흥한 시기였기에 그 문화 자체에 스며들었던 바로크 로코코 문화를 둘러보는 재미는 수월찮았다.
집과 연결이 된 4호선을 타고 이촌역에 도착을 해 국립중앙박물관을 향했고 날이 좋지 않아 약간 어두운 시간에 특별전을 볼 수 있었다. 야간전시회를 본다는 것 자체가 특이한 경험이기도 했다.
전시는 다섯 가지의 테마가 있는 전시회였다. 당시 권력의 후원을 살펴보는 섹션과 궁정생활의 네 가지 측면인 전쟁의 중요성, 종교의 역할, 실내 인테리어의 예술성, 호화로운 옷과 장신구 등을 볼 수 있는 전시회였다.
전시실을 들어서니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문화를 알리는 안내 가이드가 보인다.
이곳에 쓰여 있듯 전시는 궁정문화 속의 생활상의 모습인 조각, 회화, 가구, 장신구, 의상 등 다양한 출품작을 볼 수 있는 전시회였다. 원시적인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문화가 깃든 사회로의 발전을 보여주고, 예술이 문화 속에서 꽃 피우는 당시의 모습들은 놀라웠다.
바로크는 대략 1600년경부터 1750년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카톨릭 국가에서 발전한 양식이라고 한다. 정치적으로 군왕과 절대주의 시대였으며 사상적으로는 카톨릭 사상의 지배 체계에서 벗어난 계몽주의 시대를 보여주는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로코코'도 알아보자면 뜻으로는 '조개무늬, 자갈'을 뜻하며.. 바로크의 취향을 이어받은 18세기 양식이다. 화려한 색채, 섬세한 장식의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가 절대 왕정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였다면, 로코코는 귀족과 부르주아 예술이라고 말한다.
몇 세 몇 세에서 알 수 있듯, 영국 찰스 2세는 루이14세나 16세 같이 알려진 군주는 아니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찰스2세는, 평생 카톨릭 신자인 것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은 자신의 사상을 반영하여 주문하여 남긴다.
머리는 굉장히 크게 부풀린 파마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가발이었다고 한다. 당시 머리를 밀고 가발로 멋을 내던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목에는 크라바트라는 스카프를 맨 찰스2세를 보게 된다. '오노펠레'라는 서명이 조각에 새겨 있다. 조각상의 제작자 이름이 오노펠레인 것.
루이 14세는 1638~1715년까지의 긴 치세 기간 내내 유럽에서 선두적인 통치자로 군림했다. 이 초상 조각에는 대중에게 자신에 대한 공적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예술을 이용. 부모와 아내의 모습을 태양신 아폴로의 형상과 결함시켜 왕실의 가계를 과시한다.
청교도 혁명 때 처형된 찰스 1세가 그려 넣어진 담뱃갑의 모습니다. 군주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부여된 것이라고 믿는 왕권신수설을 암시하는 이미지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이다. '프랑소아 부쉐'가 그린 작품으로 초상화 7작품을 그린 작가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는 왕비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졌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고, 책을 많이 읽는 등 지식이 많았다고 한다. 계몽주의 사상에 심취했던 인물이었다. 이 작품은 상상에 의해서 그려진 작품이라고 한다. 대부분 서재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졌으나, 이 작품은 자연에 앉아 있는 모습이고 상상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적 요소가 반영이 된 작품이며 서구적인 모습도 담겨 있다. 턱수염을 깎고 콧수염을 정갈하게 한 것은 서구적인 시도라고 전해진다.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의 모습 또한 서구적인 모습을 나타내고자 한 의도였다고 한다.
작품 속에는 17, 8세기의 대표적인 군주의 모습들이 보인다. 적을 밟기는 하지만 죽이지 않는 정도의 나름 자비를 베풀어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모습들이 작품 속에 보인다. 원래는 앙리 13세와 14세가 마주 보는 형태로 디스플레이 되었던 작품인데,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온 작품은 한 작품만 와서 이렇게 보인다.
실내 벽면에 걸어 장식하는 직물인 '타피스트리'다. 대형 타피스트리로서 전쟁이나 싸움이라는 주제를 담아서 그려진 작품으로 알려진다. 전쟁과 승리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예술적인 면을 그려 넣으려 노력한 것이 보인다.
유럽은 성이 돌로 만들어졌기에 굉장히 추워 타피스트리를 걸어 보온용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 작품 속 주위를 구성하는 모습들은 전쟁에서 거둔 전쟁의 전리품과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특별전. 7년 전쟁 지도로 장식된 코담뱃갑>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와의 대립이 끊임없을 때 본인들의 종교를 어필하기 위해 최대한 감각적으로 호소하기 위해 제작한 <슬픔의 성모> 작품이다. 살아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눈과 치아는 유리와 상아로 제작했다.
가구 자체가 하나의 장식품이 된 코모드. 17세기 후반에 유행을 했던 코모드는 편리함이라는 불어다. 실제 수납이 가능하지만, 장식품을 올려놓는 선반으로 쓰였다고 한다. 소용돌이나 C자 모양의 로코코 장식이 눈에 띈다. 상판이 대리석이기에 무게는 상당하다.
지금의 포크와 나이프는 18세기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손으로 음식을 먹었지만 이때부터는 발전된 형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이프'에는 바쿠스 조각이 있고, '포크'에는 큐비드 조각이 있다.
17세기 후반 개인적인 주택의 공간을 재연해 놓은 곳이다. 원형 그대로를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에서 자료를 발견. 원형 그대로 재연해 놓은 것이며, '그리모 드 라 레미에르'라는 당시 부유했던 금융업자의 저택 방안 모습이라고 전했다.
궁정 오페라 극장이나 공원 등에 어울리는 모양을 기록해 놓은 책도 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 여, 아이, 미혼남, 미혼녀 등에게 사용되었던 교본. 정원에 갈 때는 목이 타지 않게 하기 위해 레이스로 목과 등을 가려야 한다는 법칙도 쓰여 있다고 한다. 남자 머리는 양머리였으며, 뒷모습은 피그테일 형태였다. 요즘 알고 있는 '포니테일' 머리도 이 시기부터 유행해 내려왔던 양식이라고 한다.
실내용 신발도 전시되어 있다. 좌우가 구분이 안 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박물관 측도 좌우 구분을 유물 번호로 한다고 하니 그 시대의 문화 하나를 느끼게 한다.
수 없이 많은 전시품들이 있지만 다 보여줄 수도 없는 법. 나머지 더 멋진 전시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길..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면 보는 의미도 사라지니 이쯤에서 글을 마치려 한다.
17, 8세기 유럽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를 둘러보는 행운은 나에게 있어 참 의미 깊은 일이었다. 5월 03일 시작된 이 전시도 이제 한 달 하고도 조금만 남아 있다. 더 늦기 전에 당시의 사회상과 문화들을 둘러보는 부지런을 피워본다면 그 시대가 조금은 더 다가오지 않을까?
또한 아무나 사진으로 남길 수 없는 작품들을 이렇게 담아올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의미가 깊은 일로 남을 듯하다. 허락된 자유를 누린다는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일까? 아무튼, 특별한 기회를 제공받아 촬영한 작품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래도 현장에서 직접 보는 즐거움을 해치지 않기 위해 양을 조절해서 보여드리려 노력해 보고자 하련다.
대부분 17, 8세기의 작품들이었던 궁정 문화 속 이야기들은 호기심 가득한 나에게는 더 없이 좋은 경험의 이야기들이었다. 1600년에서 1800년에 이르는 문화들 속에 쓸려 들어간 듯 한 느낌은 뭔가 내가 그 문화 속에 있다는 듯 느낌을 받는 기회이기도 했다.
17, 8세기의 유럽 군주들의 애장품과 그 당시 문화의 깊이를 느끼게 된 이번 전시회로 인해 스스로 공부를 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영국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101건이 출품이 된 특별전을 보는 기회였다.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은 유럽의 뛰어난 장식용 예술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인데, 이중 다수가 왕과 왕비, 황제, 교회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바로 이러하다는 것은 이곳이 당시 유럽 문화의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의 전시물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와 일맥상통한 이야기 일 것이다.
바로 이 시기가 바로크 · 로코코 문화가 가장 부흥한 시기였기에 그 문화 자체에 스며들었던 바로크 로코코 문화를 둘러보는 재미는 수월찮았다.
집과 연결이 된 4호선을 타고 이촌역에 도착을 해 국립중앙박물관을 향했고 날이 좋지 않아 약간 어두운 시간에 특별전을 볼 수 있었다. 야간전시회를 본다는 것 자체가 특이한 경험이기도 했다.
전시는 다섯 가지의 테마가 있는 전시회였다. 당시 권력의 후원을 살펴보는 섹션과 궁정생활의 네 가지 측면인 전쟁의 중요성, 종교의 역할, 실내 인테리어의 예술성, 호화로운 옷과 장신구 등을 볼 수 있는 전시회였다.
전시실을 들어서니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문화를 알리는 안내 가이드가 보인다.
이곳에 쓰여 있듯 전시는 궁정문화 속의 생활상의 모습인 조각, 회화, 가구, 장신구, 의상 등 다양한 출품작을 볼 수 있는 전시회였다. 원시적인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문화가 깃든 사회로의 발전을 보여주고, 예술이 문화 속에서 꽃 피우는 당시의 모습들은 놀라웠다.
바로크는 대략 1600년경부터 1750년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카톨릭 국가에서 발전한 양식이라고 한다. 정치적으로 군왕과 절대주의 시대였으며 사상적으로는 카톨릭 사상의 지배 체계에서 벗어난 계몽주의 시대를 보여주는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을 알리는 가이드>
'로코코'도 알아보자면 뜻으로는 '조개무늬, 자갈'을 뜻하며.. 바로크의 취향을 이어받은 18세기 양식이다. 화려한 색채, 섬세한 장식의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가 절대 왕정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였다면, 로코코는 귀족과 부르주아 예술이라고 말한다.
<영국 찰스 2세의 초상조각>
몇 세 몇 세에서 알 수 있듯, 영국 찰스 2세는 루이14세나 16세 같이 알려진 군주는 아니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찰스2세는, 평생 카톨릭 신자인 것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은 자신의 사상을 반영하여 주문하여 남긴다.
머리는 굉장히 크게 부풀린 파마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가발이었다고 한다. 당시 머리를 밀고 가발로 멋을 내던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목에는 크라바트라는 스카프를 맨 찰스2세를 보게 된다. '오노펠레'라는 서명이 조각에 새겨 있다. 조각상의 제작자 이름이 오노펠레인 것.
<루이 14세의 상아 초상 조각>
루이 14세는 1638~1715년까지의 긴 치세 기간 내내 유럽에서 선두적인 통치자로 군림했다. 이 초상 조각에는 대중에게 자신에 대한 공적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예술을 이용. 부모와 아내의 모습을 태양신 아폴로의 형상과 결함시켜 왕실의 가계를 과시한다.
<영국 찰스 1세의 초상을 새긴 담뱃갑>
청교도 혁명 때 처형된 찰스 1세가 그려 넣어진 담뱃갑의 모습니다. 군주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부여된 것이라고 믿는 왕권신수설을 암시하는 이미지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퐁파두르 후작부인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이다. '프랑소아 부쉐'가 그린 작품으로 초상화 7작품을 그린 작가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는 왕비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졌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고, 책을 많이 읽는 등 지식이 많았다고 한다. 계몽주의 사상에 심취했던 인물이었다. 이 작품은 상상에 의해서 그려진 작품이라고 한다. 대부분 서재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졌으나, 이 작품은 자연에 앉아 있는 모습이고 상상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
러시아적 요소가 반영이 된 작품이며 서구적인 모습도 담겨 있다. 턱수염을 깎고 콧수염을 정갈하게 한 것은 서구적인 시도라고 전해진다.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의 모습 또한 서구적인 모습을 나타내고자 한 의도였다고 한다.
작품 속에는 17, 8세기의 대표적인 군주의 모습들이 보인다. 적을 밟기는 하지만 죽이지 않는 정도의 나름 자비를 베풀어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모습들이 작품 속에 보인다. 원래는 앙리 13세와 14세가 마주 보는 형태로 디스플레이 되었던 작품인데,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온 작품은 한 작품만 와서 이렇게 보인다.
실내 벽면에 걸어 장식하는 직물인 '타피스트리'다. 대형 타피스트리로서 전쟁이나 싸움이라는 주제를 담아서 그려진 작품으로 알려진다. 전쟁과 승리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예술적인 면을 그려 넣으려 노력한 것이 보인다.
유럽은 성이 돌로 만들어졌기에 굉장히 추워 타피스트리를 걸어 보온용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 작품 속 주위를 구성하는 모습들은 전쟁에서 거둔 전쟁의 전리품과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특별전. 7년 전쟁 지도로 장식된 코담뱃갑>
<국립중앙박물관.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문화 특별전. 코담뱃갑>
<국립중앙박물관.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특별전. 슬픔의 성모>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와의 대립이 끊임없을 때 본인들의 종교를 어필하기 위해 최대한 감각적으로 호소하기 위해 제작한 <슬픔의 성모> 작품이다. 살아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눈과 치아는 유리와 상아로 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특별전. 코모드 전시품>
가구 자체가 하나의 장식품이 된 코모드. 17세기 후반에 유행을 했던 코모드는 편리함이라는 불어다. 실제 수납이 가능하지만, 장식품을 올려놓는 선반으로 쓰였다고 한다. 소용돌이나 C자 모양의 로코코 장식이 눈에 띈다. 상판이 대리석이기에 무게는 상당하다.
지금의 포크와 나이프는 18세기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손으로 음식을 먹었지만 이때부터는 발전된 형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이프'에는 바쿠스 조각이 있고, '포크'에는 큐비드 조각이 있다.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특별전. 17, 8세기의 1인용 찻잔 세트>
17세기 후반 개인적인 주택의 공간을 재연해 놓은 곳이다. 원형 그대로를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에서 자료를 발견. 원형 그대로 재연해 놓은 것이며, '그리모 드 라 레미에르'라는 당시 부유했던 금융업자의 저택 방안 모습이라고 전했다.
궁정 오페라 극장이나 공원 등에 어울리는 모양을 기록해 놓은 책도 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 여, 아이, 미혼남, 미혼녀 등에게 사용되었던 교본. 정원에 갈 때는 목이 타지 않게 하기 위해 레이스로 목과 등을 가려야 한다는 법칙도 쓰여 있다고 한다. 남자 머리는 양머리였으며, 뒷모습은 피그테일 형태였다. 요즘 알고 있는 '포니테일' 머리도 이 시기부터 유행해 내려왔던 양식이라고 한다.
실내용 신발도 전시되어 있다. 좌우가 구분이 안 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박물관 측도 좌우 구분을 유물 번호로 한다고 하니 그 시대의 문화 하나를 느끼게 한다.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특별전. 쌕 백 가운>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문화 특별전. 남성 귀족들의 의상>
수 없이 많은 전시품들이 있지만 다 보여줄 수도 없는 법. 나머지 더 멋진 전시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길..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면 보는 의미도 사라지니 이쯤에서 글을 마치려 한다.
17, 8세기 유럽 바로크 ·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를 둘러보는 행운은 나에게 있어 참 의미 깊은 일이었다. 5월 03일 시작된 이 전시도 이제 한 달 하고도 조금만 남아 있다. 더 늦기 전에 당시의 사회상과 문화들을 둘러보는 부지런을 피워본다면 그 시대가 조금은 더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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