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자, 사형제도 찬반양론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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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 사형제도의 찬반양론에 불을 당겨줄 영화 <집행자>가 만들어졌다. 12년만의 사형 부활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교도관들의 사형집행기가 그려진다. 외국 영화에 <데드맨 워킹>이 있다면 한국에는 <집행자>가 있다.

'살인'과 '사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게 고뇌를 해야 하는 화두를 던져주는 영화 <집행자>는 극히 중간자의 입장을 그린 영화다. 모든 판단은 관객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화두만 던져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단지 직업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교도관의 심적 갈등을 세세하게 묘사했다. 법이 집행이라는 정의만을 가지고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교도관이지만, '살인'.. 인명을 죽인다는 것은 매 한가지 아니겠는가! 이들 교도관들도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범죄의 목적을 가진 살인자가 사람을 죽이는 것과, 이런 죄수들을 법적인 처벌을 함으로서의 사람을 죽이는 것 또한 살인은 마찬가지일 뿐이라는 고뇌들이 많이 묻어난 영화다.

영화 속 연쇄살인범 장용두의 말처럼.. '난 이제 못 죽이지만 이제 너희들은 계속 죽일 거잖아'라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살인자의 눈에는 자신 또한 스스로 생각하길 사회 쓰레기 같은 사람들 죽였다고 생각하며 살인을 했지만, 어차피 생각의 차이일 뿐 교도관 또한 이들을 쓰레기로 여기며 법을 집행하며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 살인을 하는 것은 똑같은 거 아닌가요~? 라는 투의 살인자의 이런 마지막 말은 끝없이 고민을 해야 하는 법의 해석과 인명 경시에 대한 갈등들을 던져준다.


장용두가 변화하길 바라던 피해자 가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장용두의 살인자 본능은 누그러들지 않는다. 결국 장용두로 인해 사형제의 부활이 이루어지고 모범수로 살아가던 노인 죄수는 같이 사형을 당하게 된다. 이제는 어디 나가서 하라고 해도 못하는 죄수가 이 일로 인해 크리스마스도 제대로 못보고 죽어야만 했다. 김교위(박인환)와 친구가 될 정도로 오랜 수감 생활을 한 노죄수는 단 한 번의 인생 오점으로 인해 장용두와 함께 사형을 당해야만 했다.

교도관으로서 수없이 사형 집행을 했던 김교위는 사라진지 12년이 된 사형제가 갑자기 부활하며 친구 같았던 모범 죄수를 법 집행을 통해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고뇌를 해야만 했다. 결국 죽어도 친구 같은 김교위에게 사형을 당하고 싶다는 죄수의 간절한 바람으로 사형에 참석하려 하지 않던 김교위가 친구를 위해 달려온다. 죽음을 앞둔 노죄수는 김교위를 보며 한 없이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담담히 사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던 노죄수는 복면이 씌워지고 두려움에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한다. 김교위는 이런 노죄수 친구를 위해 떨리는 다리를 잡아주며 금방 끝날 거야! 라는 말로 위로를 한다. 이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둡고 다루기 힘든 소재이기에 영화에서는 가벼운 웃음거리를 넣어 풀어가려 한다. 신입 교도관을 애먹이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사고 연기나, 인질 소동중 죄수를 제압하기 위해 쏜 가스총이 잘못 발사되어 교도관에게 맞거나, 사형 집행을 위해 제비뽑기를 하는 과정, 노총각 종호의 데이트 장면, 술 잔뜩 마시고 노상방뇨를 하다가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연탄으로 머리를 가격 당하는 장면 등을 웃기게 표현하기도 했다.

<집행자> 이 영화는 실제 교도소에서의 촬영과 사실성 높은 집행 장면을 고증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너무도 현실적인 사형 집행 장면은 오히려 큰 자극을 주지 못했다. 이는 영화적인 표현이 조금 덜 들어간 듯 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화면의 흔들림이나 색감의 처리를 다양화 했으면 좋았을 텐데, 진짜 생짜로 사형 집행하는 것을 너무도 현실 그 자체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표현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주었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은근히 판단을 강요하는 입장 입장에 있다. 그것은 사형제가 과연 정당한 법적 조치인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가도 찬반양론이 있을 수밖에 없는 영원한 화두를 관객에게 맡기는 영화다. 계속 고민하라~ 정도..

이렇게 집행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배치들이 과연 사형 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까지 반대를 할 수 있게 설득할 수 있을지는 약간은 부족한 면이 있었다. 메시지를 연결시키는 방법을 이곳에서는 김교위와 노쇠한 사형수와의 끈끈한 정의 사슬과, 재경과 애인과의 낙태 관계로 대신하려 한다. 김교위와 사형수와의 교분으로 안타까움을 유발 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인과관계가 생기지만, 재경과 애인의 낙태 문제는 이 영화에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필요성이 있었다면 잘 연결 시켰어야 할 것이다.

이미 사형 제도가 폐지된 나라로 분류되는 대한민국이 연일 강력 범죄로 다시 사형제도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시기에, 어떤 것이 진정 옳은 것인가! 에 대해 꾸준히 화두를 던져주기만 하는 영화 같기도 하다. 아마 부활을 해도 그렇고, 폐지가 되어도 이 화두는 계속해서 도마에 오를 것임은 분명하다. 사형 제도란 것이 해석의 유무와 필요성의 유무에 따라 언제든 다시 고개를 쳐 들 문제는 확실하기 때문이다.


사형 제도가 법의 집행의 개념이지만 이것 또한 돌려서 생각하면 살인자를 죽이는 것도 살인이다. 사형 제도가 법을 이용한 개념의 정리일 뿐이지 살인이 아닐 수는 없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를 가만히 둬도 문제는 문제다. 만약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를 이런 통념의 전환으로만 용서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사형이냐? 무기징역이냐? 하는 물음에 어떤 대답을 피해자 가족들은 할 수 있을까?

묵인만 할 수 없는 것들이 이 문제일 것이다. 중간자의 역할에 선 <집행자>에서도 이런 부분이 바로 장용두 연쇄 살인범의 태도로 보여줬다. 피해자 가족은 장용두가 뼈저리게 살아가면서 후회하길 바라고, 참회하길 바랐겠지만 영화의 장용두 시선에서는 죽음이 닥친 바로 전에도 결코 뉘우침이 없었다. 그런 사람을 용서하란 말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장용두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회에 필요한 인간이 아닌 것들을 몇 명 못 데리고 가는 것이 아쉽다'란 소리는 섬뜩하기 까지 하다.

종호 또한 처음서부터 죄수들을 쓰레기 취급하거나 인간으로 안 본 것은 아니었다. 어떤 계기에서 나온 발로였다. 바로 자신과 같이 배치된 친구의 죽음이 도화선이 된 것이다. 그 후 냉정한 교도관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최대의 기로인 사형 집행자가 되는 일이 다가온다. 정말 강해 보이는 그였지만.. 결국 사형을 집행하고 나서는 스스로의 본성에서 나오는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그러면서 결국 종호는 정신적으로 이상을 일으킨다. 노이로제로 환청이 들리고, 괴로워하다가 사고로 목을 다치며 구급차에 실려서 교도소 밖으로 이송된다. 이송이 되는 차안에서 교도소의 모습과 철조망들이 보이며 종호는 교도소와 멀어져 간다. 이는 종호가 교도관으로서의 마지막을 알림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재경. 그렇게 사랑했던 애인과 멀어지고 따분한 교도관 생활을 해가는 재경의 일상만 남는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법의 집행에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재경의 일상은 선배 김교위의 뒤를 밟는 후배로 표현이 될 것이다.

사형 제도는 영원한 화두가 될 것이다.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인 그런 화두로서 말이다. 이 영화 <집행자>는 그런 의미에서 답을 내주기보다는 문제를 던져주는 문제형 영화다. 완성이 되지 않는 영화 그 자체로 말이다. 

아쉬운 것은 윤계상이 배우로서 아직 멀고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노력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많이 미약해 보인다. 그리고 감독의 시나리오간 연결점을 있는 실력은 좀 더 필요한 것이 눈에 보인다. 정의 하자면.. 조재현과 박인환의 출연은 90점, 시나리오 80점, 연출력 50점, 윤계상의 연기 30점 정도로 판단이 된다. 박한 점수를 줘서 미안하다. 하지만 볼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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